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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생각하며>48.교정 편지 보내는 李秀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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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을 웬만큼 크게 하는 사람은 돈을 벌거나 명예를 번다.혹은두가지를 다 번다.그러나 아주 크게 하는 사람은 다르다.돈에 대해 생존 수준의 영양섭취 이상으로는 관심이 없다.이런 사람에게는 명예가 따른다고 해도 대체로 죽은 다음에나 따르는데,죽은다음에도 따르지 않았던 사람이 오히려 많았을 것이다.그것을 알기 때문에 명성 때문에 생전에 마음 졸이는 일도 없다.
이런 점에서 이수열(李秀烈.1928년 경기도파주군광탄면 태생)씨의 면모는 아주 큰 일을 하는 사람의 그것이다.그는 일간지를 열가지나 받아본다고 한다.나하고 같은 신문사에 근무하는 동료 논설위원 한사람이 이수열씨가 써보낸 편지 한장 을 며칠전에받았다.편지에는 그 논설위원이 쓴 신문칼럼을 오린것이 동봉돼 있었는데,빨간 잉크로 열두어군데가 고쳐져 있었다.이것이 올해 예순여덟살인 이수열씨가 하는 일이다.짐작컨대 그의 신문구독은 유료일 것이다.그러나 그의 이런 교정 봉사는 무료다.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 있었다.
『국어순화의 의지와 「玉에 티」를 씻는 정성으로 몇군데 고쳤습니다.관용하시고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국어의 오염도가 위험수위를 넘었습니다.지도층 인사들이 남발하는 외국어,뜻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쓰는 한자어,일어.영어를 닮은 기형 문장,나이와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내뱉는 유치한 표현형식에 시달려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순화효과가 두루 퍼지도록 극력 도와주시기 바랍니다.프랑스처럼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인데,무명 퇴직교사가 홀로 하려니까 한없이 고독하고 힘겹습니다.』 남의 편지를 읽고 우는 격이었지만 이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말을 위해 광야에서 소리치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를 듣는 느낌이 들었다.그후 그를 만났을 때 이 느낌은 떨림의 폭이 더 넓어졌다.이력을 물으니 그가 들려준다. 『저는 원체 가난하고 형편이 좋지 않아 교육은 별로 못받았어요.국민학교만 간신히 졸업했습니다.43년 3월에 졸업했는데 가난해서 진학할 수 없어 공장 직공도 하고 학원 급사도 했습니다.당시에 일본 와세다大에서 중학 강의록을 출판해 보급했는데,12권을 다 떼면 중학과정 졸업수준이라고 했지요.그것 가지고 중학공부를 하고는 44년 8월에 국민학교 교원자격 시험을봤어요.합격했습니다.』 이 부분 이야기를 녹음기를 통해 다시 들으면서 따져보니 그러니까 국민학교 졸업한지 1년 반만에 그것도 낮에는 직공이나 급사 일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안타깝게 짧았을 것이다)에 독학으로,이 소년은 같은 조건에 있는 다른 사람이었으면 10년이 걸려도 따내기 어려웠을 자격을 딴 것이다.
아마도 인생의 이 이른 시기에 그 자신은 성실과 노력의 효력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듣는 나로서는 그의 타고난 재능을짐작하면서 찬탄하고 있었다.이야기는 계속된다.
『합격하면 대부분 채용원서를 받아 임명했는데 전 원체 체격이왜소하고 볼썽이 초라하니까 경기도청 학무과 인사담당이 저더러 기특하다고 칭찬만 하고는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데리고 놀게생겼다면서 좀 더 자라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그 참,부끄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고.집안에서는 (취직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제때는 국민학생 정원이 적어 취학을 못하는 애들이 많았다.해방이 되자 다 모아서 가르치게 되니까 학생수가 부쩍 늘어났다.교사가 사뭇 모자랐다.중학교 2,3년 다니다가 번들번들 노는 젊은이들이 면내에 있으면 교장이 찾아다니며 모셔 다가 임시교사로 임명했다고 한다.
『형편이 이래 놓으니까 이미 해방전에 정식으로 교사자격증을 따 둔 저는 18세밖에 안되었지만 파주 봉두천국민학교에서 정식교사가 되었습니다.열심히 가르쳤어요.집에서 학교는 10㎞나 돼요.그 길을 매일 걸어다녔습니다.』 그는 좀 큰 애들을 가르치는 것이 낫겠다 싶어 국민학교 교사 생활 틈틈이 한 4,5년동안 중.고등학교 국어과목 교원 자격시험 준비 공부를 해서 합격한다.하필이면 국어과목을 택하였던가 하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한다. 『독학하는 제 처지로서는 가장 능률적으로 배워 기여할 수있는 분야라고 생각했지요.그때는 자격증을 얻어도 중.고등학교 갈 길은 없었습니다.그런데 69년부터 중학교 입시를 폐지하면서중학교 입학생이 불어나고 따라서 교원도 갑자기 많 이 필요하게되었어요.그때 중등교원채용시험,요새는 순위고사라고 하는데 그걸보았어요.합격해서 69년 3월 용산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죠.』 이쯤에서 나는 앞서 말한 편지 얘기를 그에게 꺼냈다.이수열씨가말한다. 『그런 장난을 92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했어요.마포에 있는 서울여고에서 93년초 정년 퇴임했는데 그걸 바로 앞두고 시작한 것입니다.
옛날 제도교육 못받은 분네들은 어릴 때는 말을 유치하게 하다가도 자라면 차츰차츰 성숙한 말을 했거든요.지금은 배웠으면 그럴수록 오염된 말을 씁니다.(국어를 오염시키는 것은)한자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것,일본말 직역투,영어 직역투,이 세가지죠. 제가 일간지 열가지를 날마다 보고 논설위원님들 글도 교정해서 보내지만 첫째로 꼽고 있는 대상은 대학교수,그중에서도국어국문학과.신문방송학과 교수님들 글입니다.그분들 글은 하나도빼놓지 않고 고쳐서 보냅니다.한결같이 참 고맙다,좋은 일 한다.이런 전화나 편지를 해 주십니다.』 이수열씨는 『우리말 우리글 바로 알기 바로 쓰기』라는 책을 펴냈다.남이 쓴 글을 교정보아서 보낼 때는 왜 그렇게 고쳐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든 필자에게 일일이 그때마다 설명하기가 벅차니까 그 대신 『우리말…』에 그 이유가 적힌 페 이지를 낱낱이 첨기(添記)해서 보낸다. 한자어를 잘못 사용하는 예를 이수열씨가 든다.
『어휘(語彙)란 말은 단어를 모은것을 뜻합니다.그런데 주례하는 양반들은 「사랑이란 어휘」「화합이란 어휘」이런 식으로 말하거든요.보통 상식 수준의 인사들만 아니라 대학의 국어학 교수들도 이렇게 말합니다.「사랑이란 말」「화합이란 단어 」이렇게 말해야지요.「어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도 말이 안되지요.어휘 가운데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지 어휘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문(諮問)이란 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자문을 구한다」「자문을 부탁한다」「자문을 청한다」이건 잘못된 말이지요.「자문한다」고 해야지요.자문을 받아 대답해 주는 것을 「자문해 주었다」고 하는데 이건 「답신(答申 )해 주었다」「조언(助言)해 주었다」고 해야 맞지요.높은 사람의 자문에 답신하고서는 좀 도취해 자만심 갖고 하는 말이 「자문해 주었다」는 거죠.』 ***척추 부러진 우리말 이야기가 일어.영어등 외국어 번역투에 미칠 때쯤 이런 번역투는 다소 필요한 때도있지 않겠느냐고 내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필요 없어요.』 필요한 때도 있지 않겠느냐고 내가 물은 것은 실은 한 언어가 다른 언어와 「교접(交接)」하고 「혼혈(混血)」하는 것은 피할수 없을 뿐더러 바람직한 면도 있음을 말하려 했던 것이다.이수열씨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부정하는 것은 무턱대 고 우리말의 「순수(純粹)한 혈통」지키기 만을 고집하고있음일까.
그가 염려하는 것은 혼혈이 아니라 당장 목전에서 우리말의 척추가 치명적 부상(負傷)을 입고 있음일 것이다.그바람에 우리말의 단순하면서도 건강한 「아름다움」이 근본부터 흐트러짐일 것이다.여기에 이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척추가 부러지고 난 다음이라면 하긴 혼혈은 커녕 생식행위부터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그는 말한다.
『제가 지금 지껄이는 것,다 제가 쓴 책에 들어 있습니다.일본 말투는 무척많죠.「…에 다름아니다」「…있으시기 바랍니다」,이게 모두 일본말 직역입니다.우리말은「…과 다름이 없다」지요.
「양해 있으시기 바랍니다」대신 「양해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이 우리말이지요.새로 취임해 마냥 지겹도록 지껄여 놓고는 「간단하나마 이것으로 인사에 갈음합니다」 이것도 일본 말투를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해방후 50년 사이에 영어투도 우리말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로부터」「…에 의해」꼴이 대표적입니다.「축음기는 에디슨에 의해 발명되었다」라든지 특히 신문에 이런 표현 참 많죠.「정치인은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건 우리 말이 아니예요.「…시 된다」도 많이 써요.「확실시 된다」「금기시 된다」는「확실해 보인다」「금기로 여긴다」고 해야죠.「관심이 모아진다」는「관심이 모인다」,「진실이라고 보아진다」는 「진실이라고 보인다」죠.그릇을 깨뜨리면 깨지는건데 「깨 졌다」고 하지 않고 「깨뜨려졌다」고 해요.물건이 「만들어졌다」거나 …유치한 피동태어법입니다.제도교육 못받고 그냥 늙은 분네들은 이런 말 몰라요.
지금은 대학교수들이 죄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외국어투로 글을 쓰는 것 탓할 수는 없지요.서툰 직역어를 무의식중에 배워 전수했을 테니까.
개화기 이전에는 우리말의 오염이 전혀 없었습니다.『두시언해(杜詩諺解)』는 두보의 한문시를 번역한 것이라 부득이 한자가 좀섞여있긴 해도 참 부드러운 우리말입니다.훈민정음 서문에는 「중국」이라는 단어 하나밖에는 한자어가 한자도 없습 니다.그런데 이인직씨가 쓴 소설 제목 『血의 淚』 『鬼의 聲』은 우리말이 아닙니다.일본사람은 이렇게 써놓고 한자를 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뜻으로 읽어요.그러니까 이건 일본어의 직역입니다.유길준씨가 쓴 『서유견문록』,최남선씨가 쓴 「기미독립선언서」도 일본말로 써가지고 나중에 우리말로 번역한 것처럼 만들었어요.
***정성껏 쪼고 다듬자 석공이 석굴암 만드느라고 돌을 얼마나 쪼았겠습니까.지금 우리말을 그렇게 쪼고 다듬어야 해요.글을쓰면 다 고치고 나서도 또 생각해야 합니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수열씨가 외치는 이 말,그가 여러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정성스런 빨간색 잉크 교정을 언젠가 한국문화사는 90년대에 나타난 진정으로 값진 「개혁운동」가운데 하나로 기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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