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선대위장 안 맡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 민주당 조순형 대표(左)가 23일 대구 수성구 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해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23일 오전 10시10분 서울 광진구 구의동 현대프라임아파트 ○동 현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연청색 투피스 정장 차림에 하얀색 실크숄을 걸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나타났다. 기자와 맞닥뜨리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은 秋의원. 하지만 이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요 며칠새 흰머리가 부쩍 늘어 있었다. 전날 밤 민주당이 秋의원을 단독 선대위원장으로 추대한 뒤 이날 새벽까지 당 안팎에서 전화가 빗발쳤지만 일절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선대위원장직은 수락하실 건가요."

秋의원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백의종군하겠다는 마음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선대위원장을 맡지 않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당을 전면 쇄신하겠다는 자성도 없이 그냥 선대위원장을 맡으라는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당무에 복귀했을 당시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조순형 대표를 만나 두 가지를 건의했습니다. 첫째, 공천혁명이 필요하다. 둘째, 개혁의 방향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한.민 공조로 비춰지는 모습은 더 이상 안 된다고요. 문건도 3개나 준비해갔죠. 趙대표는 '나를 믿고 들어와 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더군요. 믿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탄핵 논의에 들어가더라고요."

秋의원의 말은 계속됐다. "탄핵안은 정치적 협박 정도는 괜찮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노무현 대통령의 노림수에 넘어갈 것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결국 탄핵 하나를 놓고 옥신각신하게 됐고, 그 와중에 개혁공천은 완전히 물건너갔습니다. 호남 물갈이 0%, 이걸 보고 누가 민주당을 지지하겠습니까."

秋의원은 지도부에 대해서도 "내게 맡겨 놓으면 어떻게든 배우처럼 잘할 거라고 봤나 보죠. 자성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도 않으면서…"라며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공식 입장 발표는 언제 할 거냐'는 질문에는 "오늘 이 인터뷰를 저의 공식 입장으로 합시다. 회견을 하면 방송 카메라 앞에서 뭐라 한다고 또 그러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秋의원은 왜 단독 선대위원장을 받지 않겠다고 했을까. 秋의원은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지만 측근의 전언이 의미심장하다. "당을 완전히 다 망쳐놓고 이제 와서 뒤치다꺼리나 하란 말이냐." 秋의원은 10여분의 인터뷰를 마친 뒤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다. 관내 좀 돌러 가겠다"며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막판에 전격 수락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당 주변의 분석이다. 우선 수도권.호남의 소장파 의원들이 사활을 걸다시피 하며 秋의원의 합류를 재촉하고 있다. "일단 당을 살리고 봐야 한다"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채근도 외면하기 힘들다. 秋의원은 이날 저녁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지도부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당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개혁공천을 해야 한다. 지도부의 책임지는 모습이 요구된다. 그렇잖으면 선대위원장을 맡을 수 없다."

박신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