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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쇠고기 청문회, 정부 “상황 바뀌면 재협상” 야당 “정부 고시 연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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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광우병 위험 축소”
“SRM 제거 땐 문제 없어”

통합민주당 최규성 의원은 ‘쇠고기 청문회’에서 “2005년 농림수산부가 서울대에 의뢰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43만6000마리의 미국 소가 광우병 고위험군에 속한다”며 정부가 광우병 위험을 축소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상길 농식품부 축산정책 단장은 “위험군에 해당되는 개체 수를 추정한 것으로, 미국은 2004년 6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이들 43만6000마리를 포함해 광우병 고위험소로 의심되는 78만7000마리를 검사한 결과 단 두 마리만 광우병 양성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소를 이용해 만든 화장품·생리대를 사용하기만 해도 광우병에 걸린다’는 식의 논리 비약이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다”며 “반 이명박 세력과 일부 언론이 위험성을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특히 취약하다는 ‘유전자 논란’도 재연됐다. 최규성 의원은 “한국인 중의 94%는 유전자가 MM형으로, 이 형이 주로 광우병에 걸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참고인으로 출석한 대한의사협회 양기화 연구원은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길어지자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은 “광우병에 걸린 소라도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면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강문일 원장은 “(SRM을 제거하면) 생으로 먹어도 안전하다”고 대답했다.

“정부, 쇠고기 양보한 것”
“FTA와 쇠고기는 별개”

청문회에서 야당 소속 위원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미국 의회 통과를 조건으로 쇠고기를 개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통합민주당 김우남 의원은 “미국이 ‘의회 내에 한·미 FTA에 반대하는 기류가 많으니 이 문제(쇠고기 개방)를 해결하라’고 (요구)한 것 아니냐”고 물은 뒤 “이제라도 정부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한·미 FTA라는 큰 선물을 위해 쇠고기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같은 당 최규성 의원도 “쇠고기 개방이 한·미 FTA의 선결조건이 아니냐”고 따졌다.

하지만 한·미 FTA의 협상 주역이었던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FTA 협상에서 그것(쇠고기 개방) 때문에 FTA를 안 하겠다는 말은 없었다”고 대답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 협상이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하루 전인 지난달 18일에 타결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야 3당은 그동안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용 선물로 ‘검역 주권’을 갖다 바쳤다”며 이번 쇠고기 개방 협상을 ‘조공(朝貢)협상’ ‘굴욕협상’ 등으로 규정해 왔다.

민주당 우윤근 의원은 “정상회담 하루 전에 협상이 타결된 데 대해 국민 64%가 ‘정치적 협상이었다’고 답한 여론조사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정부 측은 이날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1주일 만에 협상 끝내”
“작년 4월부터 해온 것”

청문회에선 정부의 ‘부실 협상’ 논란도 벌어졌다. 자유선진당 김낙성 의원은 “얼마든지 우리 조건에 맞춰 수입할 수도 있는데 미국에 끌려가는 협상을 했다. 위생 조건까지 완화시켜 주면서 굴욕적·국치적 협상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주일 만에 단박에 협상을 해치워야 할 사정이 있었느냐”고 따졌다.

정운천 장관은 이에 대해 “졸속 협상이 아니라 지난해 4월부터 이어져 온 협상”이라며 맞섰다. 그는 “국제적인 기준을 적용할 거냐 안 할 거냐의 문제였고 그걸 적용해서 (협상을)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이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계속돼 온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 내 도축장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김 의원은 “지난해 미국 쇠고기가 리콜된 이후 18개 도축장을 조사했는데 그중 20%가 지침을 위반했다”며 “검역 주권을 되살려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협상결과에 따르면 새로운 수입조건이 시행된 뒤 90일이 지나면 미국 내 수출 작업장(도축장)에 대해 우리 정부의 승인 권한이 없어지게 돼 있다.

정 장관은 “미국 내 700개 도축장이 모두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도축장에 대한 별도 리스트를 갖추고 위험 요인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 세계 기준에 맞게 철저히 검역된 것만 받아들이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당정, 재검토키로 했나”
“지금은 재협상 불가능”

통합민주당 정세균 의원은 청문회에서 “(수입 중지 조치 등) 합의를 파기하는 것보다 재협상을 해야 한다.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재협상을 검토하기로 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정운천 장관은 “당에서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결정된 것은 없다”고 답했다. 민동석 차관보도 “양쪽이 협의한 내용을 재협상하는 일은 없다. 개정은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정 장관은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근거 등이 달라질 경우 재협상도 가능하다는 ‘조건부 재협상’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앞으로 여러 가지 국제적 근거나 과학적 근거가 변할 상황이 되면 재협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이 “대만과 일본이 우리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마치면 재협상하겠느냐”는 질문에 정 장관은 “재협상을 확실히 요구하겠다”고 답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15일로 예정된 정부의 고시 제정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우남 의원은 “국민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단호하게 고시 발효를 유보함으로써 오히려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하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지난달 22일 입안예고 했으며, 15일 확정 고시된다.

“2005년 수입재개 시사”
“당시엔 월령제한 지켜”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은 청문회에서 “그간 (미국과의 협상이)진행됐던 과정을 국민에게 보고하겠다”며 “첫째로 2005년 6월 23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직후 쇠고기 수입 재개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쇠고기 개방 협상의 출발점을 노무현 정부 때로 못 박은 발언이었다.

이어 홍 의원은 쇠고기 개방 협상이 타결되기까지의 단계를 12단계로 나눈 뒤 “12단계의 협상 절차 중 11개가 노무현 정부에서 한 것이고 최종 합의만 이명박 정부에서 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의 발언에 대해 정운천 장관도 “내가 취임한 지 40일 만에 (쇠고기 개방)협상이 시작됐다”고 대답했다. 이번 협상의 타결 분위기가 현 정부 출범 이전부터 조성돼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주장한 셈이다. 반면 통합민주당 신중식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쇠고기를 풀어야겠다고 전향적으로 접근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끝까지 수입 소의 월령(月齡)을 30개월 미만으로 제한하는 등 두 가지를 전제했다”고 반박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성경륭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4일 회의에서 ‘30개월 미만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을 (미국이) 안 받겠다고 하면 한 발짝도 나가지 말라’고 결론 내렸다”고 전했다.

남궁욱·정강현·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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