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갈등 ‘위키피디아 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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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새로운 전쟁이 벌어질 뻔했다. 전장은 다름 아닌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다.

7일 일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에 따르면 최근 친이스라엘계 인사들이 위키피디아에 올라오는 글에 조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다 사전 적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내 중동 문제의 정확한 보도를 위한 위원회(CAMERA)’ 소속 선임 연구원인 질리드 이니가 지인들에게 e-메일을 보낸 게 사단이 됐다. 그는 메일에서 “위키피디아에 오르는 중동 관련 글들이 이스라엘에 반감을 가진 이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걸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네티즌들이 직접 만드는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익명으로 남이 올린 글을 수정할 수 있다. 이니는 이런 점을 이용해 반이스라엘 성향의 글들을 손보려 한 것이다.

금세 50명 이상의 지지자가 호응하고 나섰다. 이니는 이들에게 모임의 존재를 절대 비밀에 부칠 것을 당부했다. 자칫 반대파에게 ‘시오니즘(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운동)’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위키피디아를 습격하기 위해 비밀 결사대를 조직했다는 인상을 줄까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비밀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임이 구성된 지 4주 만에 내부자 한 명이 “우리는 군대를 조직하고 훈련을 마치는 대로 전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떠벌린 것이다. 이들이 위키피디아 내에서 좀 더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관리자(administrator)’가 될 필요가 있다는 논의를 한 것도 드러났다. 관리자는 위키피디아에 오른 글을 삭제하거나, 다른 이들이 글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막을 특권을 지닌 네티즌을 말한다.

이에 미국 시카고 소재 친팔레스타인계 언론사인 ‘일렉트로닉 인티파다’가 발끈하고 나섰다. 이 회사는 “CAMERA 측이 위키피디아에 침투해 조악한 주장을 마치 사실인 양 퍼뜨려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고쳐 쓰려는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사태가 이쯤 되자 위키피디아가 적극 개입했다. 세 명의 관리자로 구성된 위원회는 이니의 조직원 5명에 대해 무기한 위키피디아 사이트에 접근할 수 없도록 제재를 가했다. “위키피디아에 글을 쓰거나 고칠 땐 상호 존중과 투명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유사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 비밀리에 사적인 조직을 구성해 영향력을 미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이 같은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탓에 위키피디아는 종종 정확성 및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었다. 예컨대 미국 하원 및 특수 이익단체들이 몇몇 글에 자신들의 정견을 덧붙인 게 적발된 적이 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가 특정한 글들을 수정해 주는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제시했다가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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