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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견>지금은 가로쓰기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미국에선 컴퓨터로 지도를 만든다는 말에 놀라 컴퓨터를 배우기시작한 때가 31년 전이다.이제는 비슷한 시기에 창간된 中央日報가 창간30주년을 맞았고 컴퓨터로 지도를 만드는 것은 물론 출판작업의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가 활용되고 있다 .
출판분야에서의 컴퓨터 활용은 크게 종이책을 만드는 작업과 비(非)종이책을 만드는 작업으로 나뉘는데 이를 통틀어 전자출판(CAP)이라고 한다.
컴퓨터를 사용해 일간신문을 제작하는데는 전자출판작업중 탁상출판(DTP)방식보다 전산조판시스템(CTS)방식이 주로 사용된다.최소한 32面을 2시간안에 제작할 수 있는 속도를 갖추어야 일간신문을 제작하는데 실용성이 있기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PC)를 사용하는 탁상출판방식은 적당하지 못하다.그러나 전산조판시스템으로 일간신문을 제작한다 하더라도 물론 신문기사는 노트북PC부터 랩톱PC.탁상형PC에 이르기까지 어떤 종류의 PC로도 입력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PC의 모니터화면은 대부분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우리의 눈이 좌우로 달린 탓에 가로가 긴 것,즉 좌우가 긴 것이 시야가 넓어 읽기에 편하기 때문이다.현재 대부분의 단행본 서적이 가로쓰기로 바뀐 것이 세로쓰기보다 가로쓰기가 읽기에 편하다는 것을 반증하고있다. 신문은 아니지만 같은 분량의 단행본 서적으로 실험해본 결과 가로쓰기 조판의 경우 세로쓰기로 조판된 것보다 오독(誤讀)발생률이 적고 읽는 속도도 빨랐다.
현재 교과서를 비롯한 거의 모든 출판물이 가로쓰기를 선택하고있는데 유독 일간신문만이 세로쓰기를 고집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中央日報에서 과감하게 세로쓰기를 탈피하고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中央日報는 과연 독자를 위하는 신문이구나』하고 감탄했다.
훈민정음의 세로쓰기는 5백40여년이 지나오면서 글자꼴의 변형과 함께 가로쓰기 형태로 바뀌고 있다.네모틀 안에 가두어 놓은형태의 네모틀 글자꼴은 세로쓰기와 가로쓰기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그러나 「빽」자(字)처럼 획이 많은 음절의 글자와 「가」자처럼 획수가 적은 음절의 글자를 같은 크기의 네모틀에 넣으려면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글자꼴 역시 네모틀을 벗어난 탈(脫)네모틀 글자를 개발해야 변별력과 가독력이 좋아지는데 세로쓰기로는 아름다운 탈네모틀 글자를 개발하기 쉽지 않다.또 신문제작의 전산조판시스템방식에서 세로쓰기용 조판방식은 가로쓰기용의 그것에 비해 디자인이 다양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정보사회에서 종이신문은 세로조판인 반면 모니터화면에 나타나는 전자신문의 내용은 가로쓰기 형태로 나타나는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점이다.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문기사 내용을 데이터베이스(DB)형태로 저장,모니터화면 에서 찾아볼 때 원래 세로쓰기로 조판된 종이신문의 형태와 똑같이 모니터화면에 구현되도록 특별한 조판지정명령어를 DB에 같이 저장해야 하는 비경제적인 방식을 채택해야 했다.
그러나 中央日報처럼 전면 가로쓰기를 채택하면 모니터화면의 글자도 가로쓰기 형태이므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종이신문 형태를 中央日報 인터네트전자신문에서 구현할 수 있게 돼 경제적이고 또전자신문 독자에게도 친근감을 주게 된다.
문화체육부의 위촉을 받아 한국전자출판연구회에서 개발한 「교과서용 본문체.본그림및 디지털 폰트」를 개발할 당시 유의했던 점10가지중 첫번째가 한글위주의 조판,두번째가 가로쓰기 전용,세번째가 가독성(可讀性)이었다.가로쓰기 전용의 글 자꼴 개발이 두번째로 중요시됐던 것이다.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꾸는 것이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 우리 한글문화의 입장에서는 정보시대에 알맞은 전혀 새로운 신문을 창조하는 것과 같다.
中央日報가 컴퓨터시대를 맞아 과감하게 전면 가로쓰기라는 새시대의 한 획을 긋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격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독자의 입장을 생각하는 신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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