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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yle] W호텔 총주방장 "왜 한식은 스타일리시하지 못한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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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지 꼬박 일주일 후인 지난 2일 오후 3시. W호텔의 양식당 ‘키친’에서 그를 만났다. 긴장된 표정이었다. 명함을 건네기도 전에 요리부터 보러 가자고 재촉했다. 완성된 요리는 사진 촬영을 위해 창가 테이블에 곱게 놓여있었다. 길쭉한 직사각형의 하얀 접시 위에 새빨간 철제 물뿌리개 하나. 그 속을 투명 캐러멜을 입힌 폭삭한 슈로 겹겹이 채워놓았다(사진). 일주일간 고민한 것치고는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닐까? 그가 손을 내저었다. “프랑스 전통 디저트 방식과 아방가르드 패션 정신을 반영한 오트 퀴진을 표현하고 싶었다.” 평균 15가지 코스가 나오는 오뜨 뀌진의 꽃은 바로 디저트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것이 당신의 오트 퀴진인가

“기존 메뉴에 없는 것을 내놓으려고 고심했다. 중앙일보만을 위한 오트 퀴진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길래. 맨먼저 중앙일보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세련되고 정교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 그것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오트 퀴진이라는 게 그렇다. 앞서가는 스타일과 가장 높은 품질로 음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뜻한다.”

-한국에서도 요리사들이 한식 오트 퀴진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 중이다. 오트 퀴진 전문가로서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전통 한식은 매우 복잡하다. 한 상에 수십가지 반찬을 놓아야 한다. 한번에 한 접시씩 코스별로 보여주는 서양 오트 퀴진에 비해 너무 어렵다. 그러나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한식 오트 퀴진이라는 명성을 얻어야 한다. 이탈리아와 일본, 인도, 태국 음식은 이미 이런 변화의 과정을 거쳐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 음식도 오트 퀴진이라는 방식과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 됐다.”

-한식에 대해 잘 모르지 않나?

“우리도 가끔 한식을 시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은 한국 음식이 아니다’라고 비난한다. 프랑스에서도 오트 퀴진은 정통 가정식이 아니다. 보여주고 감상하기 위한 작품이다. 일식이 세계적으로 고급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인 결과다.”

-오트 퀴진이 되기위해 한국 음식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한식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 우선이다. 시내에 나가보라. 사람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와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한다. 젊은 세대, 트렌드 세터들이 원하는 스타일리시한 한식당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스타일리시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왜 한식당은 그렇질 못한가.”

인터뷰 내내 그는 김치와 갈비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전부가 돼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이미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있는 수많은 한국 요리사들이 다른 나라 음식이 아니라 한식을 위한 도전을 시작해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세계인들이 한국 음식을 지칭하는 새로우면서도 친근한 용어를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는 서양 오트 퀴진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세련된(sophisticated)’과 ‘현대의(contemporary)’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꼽았다. 단순해 보이되, 세련된 현대 음식. 그게 한식이 도전해야 할 오트 퀴진의 세계인 셈이다.

◇키아란 히키=아일랜드 출신인 그는 런던과 뉴욕의 포시즌스 호텔 등 세계 유수의 호텔에서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 10월 W호텔 총주방장으로 영입됐다. W호텔의 레스토랑 ‘키친(Kitchen)’, ‘나무(Namu)’, ‘토닉(Tonic)’ 등의 메뉴를 총괄하며, 호텔에서 개최되는 모든 연회행사를 총괄한다. 휘하에 65명의 조리사를 두고 있다.

글=이여영 기자, 사진 제공=데이라이트 스튜디오 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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