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for Money] 돈 잘 쓰는 게 재테크 출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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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철 지난 옷을 뒤지다 호주머니에서 1만원을 발견했다. 그런가 하면 월급 통장 잔고가 꼭 1만원밖에 남지 않았을 때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 더 쉽게 1만원을 써버렸던가? 두말할 것도 없이 첫 번째 경우다.

이유가 뭘까? 사람들은 각각의 상황에서 돈에 대해 이름을 붙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공돈’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후자는 ‘피땀 흘려 번 돈’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자. 주머니 속 돈 1만원이 진짜 공돈일까?

사람들이 돈에 부여하는 ‘이름’은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갔다고 치자. 5000원쯤은 우습게 여긴다. 그러나 재래시장에서 콩나물을 살 때는 크게 달라진다. 백화점에서 50만원도 쉽게 내놓는 사람이, 재래시장에서는 50원을 깎기 위해 안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화점에 갈 때 갖고 가는 돈은 ‘큰 맘 먹고 옷 한 벌 살 돈’이다. 그러나 재래시장에 들고 가는 돈은 ‘소소한 먹거리를 살 푼돈’이다.

같은 금액인데도 신용카드를 쓸 때와 현금으로 낼 때가 다른 것도 비슷한 이치다. 할인된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세일 폭이 크면 쉽게 사는 것만 해도 그렇다. 이 점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경제학과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이 혼합된 이 신종 학문은, 1980년대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1981년 이 분야에서 기념비적 실험을 한 바 있다. 100만원짜리 대형 TV를 사는 경우와 5만원 하는 전자계산기를 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두 제품 모두 3만원 싸게 살 수 있는 가게가 같은 거리에 있다고 치자. 어떤 경우에 다른 가게까지 가려고 할까? 당연히 전자계산기를 살 때다.

많은 기업은 돈에 이름을 붙이는 소비자의 습성을 이용한다. 원래 가격을 비싸게 매긴 후 할인율을 높이는 수법은 고전적이다. ‘연간 정기 구독료가 60만원’이라고 하지 않고, ‘하루에 커피 한 잔만 안 마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를 역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습관적으로 지출하는 돈에 중요한 의미를 담은 이름을 붙여보자. 매일 커피, 생수, 담배, 간식, 외식 등에 쓰는 돈을 푼돈이라고 하지 말자. ‘자동으로 백만장자 되기’ 의 저자인 토마스 바흐는 대신 그 돈을 백만장자가 되기 위한 종자돈으로 여기라고 한다. 복리 계산에 따르면, 매일 5달러를 절약하면 41년 만에 백만장자가 된다. 그는 이런 돈에 라테 요인(latte factor)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매일 마시는 라테 한 잔을 아끼는 것이 백만장자의 구성요소라는 뜻이다.

꼭 이런 이름이 아니어도 좋다. 당신이 우습게 보는 돈의 가짜 이름을 멀리하라. 공돈이나 푼돈, 세일 전 가격, 신용카드 등이 좋은 예다. 대신 모든 돈을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줄 중요한 밑천이라고 여겨라. 당장 은행에 넣어두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김방희 KBS 1라디오‘시사플러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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