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금융街 인수.합병으로 술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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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런던 한복판을 관통하는 중앙선 지하철의 「뱅크」역을 빠져 나오면 영국 중앙은행과 왕립증권거래소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들어온다.이곳이 바로 세계 유수의 은행.증권사 수백개가 모여 있는 런던의 월街 「시티 오브 런던」(줄여서 시티) 이다.
뉴욕.도쿄(東京)와 함께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꼽히는 시티거리는 올들어 부쩍 늘어난 외국 금융기관들의 「공격」으로 일대 변혁을 맞고 있다.
지난 3월 베어링은행 파산이라는 소용돌이가 한차례 몰아친 뒤5월에는 스위스은행(SBC)이 영국 최대증권사인 SG워벅을 13억달러에 인수해 버렸다.
이어 6월에는 독일 드레스드너은행이 클라인워트 벤슨증권을 16억달러에,7월엔 미국의 메릴린치社가 스미스 뉴 코트증권을 8억4천만달러에 사들였다.올들어 외국 금융기관의 수중에 들어간 영국 금융회사는 굵직한 것만도 한손으로 꼽기 어려 울 정도다.
그러고도 시티거리에는 인수.합병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유럽을 대표하는 런던금융시장이 외국회사에 점령당하는 것이 아니냐는우려도 나오고 있다.그러나 현지 금융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낙관적이다.은행의 증권화와 금융의 다국적 화 추세에서 볼 때 영국국적과 특정사업영역을 고수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합병 5개월째를 맞는 SBC 워벅의 젠스 돌스트럽 이사는 『최근 이곳의 합병러시를 단순히 영국회사가 외국기업들에 먹히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영국금융 특유의 소자본 경영으로 40여개국에 퍼진 체인망을 유지하는데 어 려움을 느끼던 워벅은 스위스은행의 자금력을 필요로 했고,스위스은행은 자금조달.주식투자등 방면에서 런던의 섬세한 금융기법을 끌어 오고 싶었다는 설명이다.국적(國籍)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태도다.
런던경영대학원의 리처드 브릴리 교수도 『경영권 이전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으며 외국자본의 진출로 런던금융시장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경제의 쇠퇴로 런던금융시장의 규모는 뉴욕.도쿄에 이어 세번째로 전락했지만,외환시장만은 아직도 하루평균 거래량이 4천6백억달러로 뉴욕(2천4백억달러).도쿄(1천6백억달러)를 큰 차로 따돌리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다수 은행간 외환거래 결제를 전담할 국제은행간 외환결제원(ECHO)이 처음으로 런던에 설립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중에는 유러채권시장이 붐을 이룬 70년대 초반과 86년 금융규제완화 직후의 「빅뱅」에 이어 올들어 런던금융시장은 초국적 인수.합병으로 세번째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런던=洪承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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