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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객석] 풍부하고 세련된 악기들의 합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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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의 대문'에서 귀가 후련한 포르티시모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타악기와 금관악기의 합창이 울려퍼지는 대목마다 일부러 볼륨을 줄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 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한 러시아 국립 카펠라 오케스트라(지휘 발레리 폴리안스키)는 풍부하고 세련된 음색에다 유연한 프레이징으로 음악팬들을 매료시켰다. 눈부신 관현악적 효과로 점철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도 얼마든지 섬세하고 차분하게 연주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소 낯선 이름의 이 오케스트라는 1959년에 창단된 '소련 문화부 오케스트라'가 91년 러시아 국립 카펠라 합창단과 합병하면서 간판을 바꾼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전통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카펠라'는 똑같은 악기로 같은 곡을 연주해도 오래 숙성된 시골집 된장맛 같은 구수하고 독특한 향과 세련된 풍모를 자아냈다. 합창 지휘로 잔뼈가 굵은 폴리안스키의 활약에 힘입어 명료하면서도 따뜻한 소리를 냈다. 금관악기 파트는 파이프오르간처럼 편안하고 균형있는 앙상블을 들려줬다.

파가니니 협주곡을 들고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츨 리(15)는 줄리아드 음대 도로시 딜레이 교수가 타계 직전까지 가르쳤던 마지막 한국계 제자. 착실한 기본기에다 침착하면서도 성숙한 표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눈부신 기교에 그치지 않고 개성있는 연주자로 우뚝 서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전기 음향 보정장치의 조정 미숙 때문인지 배경소음이 발생해 공연 내내 귀에 거슬렸다. 마치 멀리서 작은 북을 연타하고 있는 것 같은 잡음이 계속 깔린 것이다. 카펠라는 24일 광주 문예회관, 25일 울산 현대예술관, 26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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