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북한전문가 셀릭 해리슨이 보고온 최근 북한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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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카네기평화재단 수석 연구원이자 북한문제 전문가인 셀릭 해리슨은 27일 북한이 주한미군의 무기한 주둔에 반대하지 않으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北-美간에는 「새로운 평화체제」에합의하고 남북한간에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활동에 관한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양 체제와 위원회를 동시에 가동할 것을 제안했다고밝혔다.지난 19일부터 8일동안 평양을 방문,26일 도쿄(東京)에 도착한 해리슨은 27일 오전 젠닛쿠(全日空)호텔에서 中央日報 취재진과 단독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다음은 인터뷰 전문. [편집자註] -북한에는 얼마나 계셨습니까.
『지난 19일부터 26일까지 머물렀습니다.』 -이번 방문중 만난 사람들은.
『김영남 외교부장과 1시간반,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과 만찬을 겸해 3시간,이형철 미국담당국장과 3시간 만났습니다.특히 이번 방문중 북한인민군 판문점 수석대표 이찬복 중장(한국군 계급으론 소장)과의 면담은 가장 의미있었습니다.면담은 판문점 북한측 연락사무소에서 오찬을 겸해 4시간반동안 진행됐습니다.』 -먼저 그들이 말한 것 가운데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까.
『북한지도부는 주한미군이 무기한 주둔하는 데 대해 찬성하고 현 정전체제를「새로운 평화체제」(new peace mechanism)로 전환하자고 촉구했습니다.북한이 주장하는 새로운 평화체제는 두단계가 동시진행되는 형식을 취할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北-美간에 상호안보협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가동준비가 끝난 시점에 지난 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지도부인사들은 北-美 평화협정 체결의 비현실성을 인정하고평화협정이 北-美 관계정상화의 전제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그러나 양국간 관계정상화를 위해서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강석주 부부장은「北-美간 우호적 관계를 위해 주한미군이 유엔의 모자를 벗을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찬복 중장은「북한은 주한미군이 무기한 주둔한다는 미국 군당국과의 상호양해 아래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상했다.북한의 입장은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이 철수돼야 한다는 것이지만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상 하루이틀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 기 때문에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상한 것이다…정전협정이란 북한에 대한 적대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므로 현 협정이 존속하는 한 北-美관계 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이같은 구상과 관련,北-美간에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까.
『미국은 작년 12월 미군 헬리콥터 월북시 北-美간 협상과정에서 양국간 군사접촉 창구를 개설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지난 5월19일 미국은 북한측에 대해 양측 군실무자들간의 협의를제의하는 서한을 발송했고 북한측 인사들의 말을 빌 리면 미국은추후 장성급 접촉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협의체(mutual security consultative committee)를 구성하자고 제의했다는 것입니다.그로부터 지난 12일까지 열차례의 영관급 실무회담이 열렸으며 그 결과 지난 21일 양측간 장성급회의를 갖기로 잠정합의했으며 미국측 대표로 군사정전위 미국측대표인 공군소장 넬스 러닝이 내정됐다고 합니다.양측 대표와 구성인원.회의절차까지 포함돼 있는 잠정합의문을 이찬복이 내게 보여주었습니다.그러나 당일 회의석상에 미국장성은 나타나지 않았으며이는 한국정부의 방해공작 때문이었을 것이라면서 이찬복은 분개했습니다.』 -「새로운 평화체제」와 남북대화의 상관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김영남 외교부장은「北-美간 새로운 평화체제가 정립되고 이행될 때 북한당국은 남북공동위원회를 가급적 빠른 시일내 가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두 차원의 관계가 동시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평화체제의 순조로운 가동은 남북간 군사대화 재개를 가능케 할 것이라는 입장을 외교부장뿐아니라 이찬복도 분명히 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주요인사들과의 대화에서 북한당국이 주장하는 연방제방식의 남북관계 실현에 주한미군이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북한의 연방제는 통일과는 거리가 있는,남북간 평화공존을 위한 북한식 체면유지 방식 같습니다.적어 도 북한지도부는 일본.중국.러시아등 주변국과의 관계에 있어 북한에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필요성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그러나 기존의 주한미군철수 주장과 새로운 평화체제 제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 한 뚜렷한 구상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지도부가안보구상과 관련해서도 점차 현실적 방향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강석주부부장의 말을 인용하면 보다 명확해집니다.「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의 연방제를 미국이 지지해 주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평화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그러나 냉전종식 이후에도 미국은 주한미군의 주둔 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상황에 서 北-美간 새로운 평화체제를 통한 한반도의 안정을 보장하는 노력이 시급히 요청된다.…평화체제는 남북한 상호간의 무력위협을 억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北-美 제네바 기본합의서의 이행과 관련한 북한측 평가는 어떻습니까.
『북한측 인사들은 이제까지의 北-美 기본합의서 성과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음을 부각시키려 했습니다.북한은 미국이 한국과의 공조하에 북한체제의 변화를 시도하고 궁극적으로 체제붕괴를 도모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고 있습니다.미국의 정치 적 의지가 있다면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할 수 있는 많은 조치들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형철미국국장도 미국의 대북정책이 변화되었다는 조짐을 발견할수없다면서 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미국의 대북한 적대정책이 변화될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경수로문제에 관해서 남한측 인사들의 방북에 대해그리 경직된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오히려 추가재정을 포함하여 모든 비용을 미국이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누차 지적했습니다.북한은 현재 「돈에 관한 문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난번 콸라룸푸르에서의 회의에서 북한측 입장이 다소 유연했던이유는 북한에 대한 재정적 지원 범위를 확대하는 데 몰두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연락사무소 개설문제는 알다시피 며칠전 열린 회의에서 양국간 잠정적 영사보호에 합의했습니다.구체적으로 언제 연락사무소가 개설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그러나 사무소부지 등 상당부분 합의가이뤄져 있습니다.금년말 개설을 예상한다면 너무 이르다고 하겠습니다.』 -북한의 내부사정은 어떤가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김정일(金正日)의 주석직과 당총비서 취임이 왜 늦어지고 있으며 언제쯤 취임할 것인지에 주목돼 있습니다.언어장애 등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있는데. 『김정일의 권력승계 문제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방북 기간중 평양시내 대부분의 주민들이 10월10일 당창건50주년 기념행사 준비에 동원돼 분주한 모습을 보았습니다.평상복 차림이었으나 다소 들떠있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의 당총비서 취임을 10월10일로 예상하고 있으나 북한체류중 이를 뒷받침할 이야기는 어느 누구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데 대해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승계시기에 관해서는 무관심한 듯했습니다.이러한 북한내 분위기라면 김정일이 서둘러 공직에 취임할이유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치적으로 안정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을 뒷받침할 어떠한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은 심각하며 오는 11월과 12월 추위가다가오면서 그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을 북한지도부 인사들이 인정했습니다.식량난과 관련해 강석주부부장은「 북한은 미국에대해 공식적인 식량지원을 요청한 바 없다.그러나 어려움을 겪는북한에 대한 미국의 식량지원은 양국간 관계 정상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일이 실질적 권한을행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북한지도부내의 결속이 예전과 같은지 의문입니다.강.온대립이나 김정일의 통치에 대한 군부의 지지정도 등 의문점이 많습니다만.
『김정일이 과거와 같은 정도로 각부문의 지지를 받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김정일 못지 않게 군부,관료,정보기관 등에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향유하는데 필요한 정통성 유지를 위해 김정일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정권 내부의 알력이 정권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물론 부처간 마찰이 특히 대외경제정책 부문에 존재하는 듯합니다만 이는 전술적 차원의 이견일뿐 외부로 표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부내 강.온대립과 관련한 강석주부부 장의 말을 소개하자면 북한군부와 核산업관련 인사들은 미국이 과연 경수로를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의혹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측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이들의 불만을 해소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이러한 발언이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북측이 대미(對美)관계 개선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추측도 있는데요.
『북한이 의도적으로 대미관계 개선의 속도를 늦추려 한다는 해석은 지나친 것입니다.북한은 현 정전협정이 北-美관계 정상화에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습니다.』 ***약 력 ▲1927년3월 美피츠버그 출생 ▲하버드大 졸업 ▲AP통신 인도특파원,워싱턴 포스트紙 도쿄 지국장 ▲美존스 홉킨스大 교수 ▲現카네기재단 수석연구원 ▲72년 金日成인터뷰.다섯차례 방북 ▲「하나의 한국?」등 한반도 정세 관련 논문 다수.

<노재현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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