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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에 상반신 굽혔다” →‘MB 독도 포기’ 증거로 바뀌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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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1시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이명박 독도’가 올랐다. 네티즌 수천 명이 일제히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포기했다’는 소문을 확인하려고 인터넷을 뒤진 것이다. ‘독도 포기’를 주장하는 블로그와 게시물은 권철현 주일 대사의 지난달 발언을 ‘근거’라며 제시했다. 권 대사는 “낡은 과제이면서도 현안인 독도·교과서 문제는 다소 일본 쪽에서 도발하더라도 호주머니에 넣고 드러내지 말자”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일부 네티즌들에 의해 “새 정부가 독도 주권 포기를 선언했다”는 ‘증거’로 둔갑했다. 대통령의 일본 방문 사진도 제시됐다. 일왕과 악수하며 목례와 함께 상반신을 굽혔다는 것이다. 곧 인터넷 서명이 시작됐다. 규탄 서명 운동에는 사흘 만에 2만여 명이 참가했다. “독도가 언제부터 대통령 혼자만의 것이냐” “자기 멋대로 하는 MB라지만 우리나라 땅을 왜 넘겨주나” 같은 항의가 이어졌다. 서명자들에겐 독도 포기가 검증된 사실로 자리 잡았다.

◇괴담 확산시키는 인터넷=인터넷 괴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광우병을 시작으로 ‘독도 포기’ ‘수돗물 값 폭등’ ‘의료비 급등’ 등 괴소문들이 확산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인터넷 ‘퍼나르기’와 서명 운동을 거쳐 사실인 양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괴담과 유언비어의 대상은 식품(광우병)·보험(의보 민영화)·공공요금(수도 민영화, 인터넷 종량제)·민족주의(독도 포기) 등이다. 국민 건강과 직결됐거나 생활과 밀착된 것들이다.

지난달 30일부터 포털 다음에선 ‘수도 민영화 반대’라는 이름의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5일 현재 3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수도 민영화로) 6월부터 ‘물 값’이 하루 14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14만원은 ‘하루에 한 사람이 이용한 물의 양(285ℓ)’에 ‘기업에서 파는 물 값’(1ℓ당 500원)을 곱한 수치다. ‘1ℓ당 500원’은 마시는 생수의 소매가격과 비슷하다. 이 같은 계산은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 기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일부 저수장의 운영만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이다. 백 배 이상 오를 수 있는 요인이 전혀 없다”며 의아해 했다. 환경부 담당 공무원도 “일부에선 볼리비아·페루 같은 남미의 예를 들어 ‘10~20배 폭등’을 주장하나 이들 국가는 민영화 당시 외환위기와 인플레이션이 겹쳐 폭등했던 것”이라며 “한국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영화 내려받기 몇 번으로 3일 만에 900만원이 든다”는 ‘인터넷 종량제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종량제는 대통령의 선거 공약에 포함된 적도 없고 위원회가 인터넷 종량제에 관해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정도전 예언’이라는 괴소문도 유행 중이다. 조선의 개국 공신 정도전(1342~1398)이 “숭례문이 불타면 나라에 운이 다한 것이니 멀리 피난 가야 한다”고 예언했다는 내용이다. 네티즌들은 숭례문 화재,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광우병 논란 등을 꼽으며 “예언이 맞아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예언은 출처가 불분명한 상태다.

◇“감성에 의존한 다수의 횡포”=소문의 확대 재생산엔 일정한 경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특정 관점에 따라 ‘짜깁기’된 정보 게시 → 다수 네티즌의 블로그·게시판으로 ‘퍼나르기’ → 대형 포털에서의 대규모 서명운동으로 이어진다.

일부 연예인의 관련 글·발언도 네티즌의 신뢰를 높인다. 인기댄스 그룹의 한 멤버는 쇠고기 수입 협상 직후 미니홈피에 “재수 없게 미친 소에 걸려(먹고) ×× 되면 어쩌냐”는 글을 남겼다. 그러자 팬클럽 등 청소년은 ‘쇠고기가 수입되면 사랑하는 오빠를 한국에서 못 볼 수도 있으니 막아야 한다’며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이 ‘정보 소통에 기반한 합리적인 토론’ 대신 ‘감성에 의존하는 다수의 횡포’에 물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포털 관계자는 “다소 엉뚱하고 튀는 내용일지라도 현실과 동떨어지면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자정 능력’이 있었으나 최근엔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괴담의 대상은 정부가 개혁이나 도입을 주장한 정책이 많다. 하지만 구체적 내용과 일정이 공개되지 않다 보니 괴담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경배(NGO학)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국민 설득, 정보 공개에 둔감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광우병을 계기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고 있다. 정부가 구체적 팩트를 가지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인성·한은화·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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