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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공원이 운동장이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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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매헌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옆에 있는 양재근린공원 인조잔디 축구장에서 뛰어 놀고 있다. 뒤에 보이는 분홍벽돌 건물이 매헌초등학교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양재 근린공원 인조잔디축구장. 체육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축구와 피구를 하며 신나게 뛰어 놀고 있었다. 공원 바로 옆에 있는 매헌초등학교 학생들이다. 5학년 박하은양은 “넘어져도 아프지 않고 흙먼지도 나지 않아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반 김치현군은 “체육시간에 인조잔디에서 축구를 하다 보면 프로선수가 된 느낌이어서 방과 후에도 뛰논다”며 “체육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뛰놀 운동장이 없는 서울 매헌초등학교가 운동장 대신 공원의 축구장(600㎡)을 활용하는 교육실험을 하고 있다. 올 3월 문을 연 이 학교는 독립문·조원·행현초등학교에 이어 서울에서 네 번째로 생긴 ‘운동장 없는 학교’다. 4000㎡의 학교 부지에 4층짜리 건물 한 채만 들어섰지만 인근 공원을 활용해 운동장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초등학생 수가 줄고 있지만 서울의 일부 초등학교는 여전히 만원이다. 학생이 넘쳐 학교를 세워야 할 형편이지만 운동장 갖춘 부지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립문·조원·행현초등학교도 학생 수요에 맞춰 학교를 세운 뒤 옥상이나 실내체육관을 운동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매헌초교는 근린공원을 활용하는 해법을 찾았다.

◇공원 안 학교=서울 양재2동의 주민 수는 2만3000여 명이다. 동네에 학교가 없어 아이들은 20~30분을 걷고 왕복 6차로 도로를 건너 강남구 포이초등학교를 다녀야 했다. 이 때문에 포이초교는 학급당 학생 수가 40명에 이르는 과밀상태였다. 주민들은 1996년부터 학교 건립을 요구했지만 땅이 없었다.

2002년 1월, 양재공원 내 주차장(4000㎡) 부지에 학교를 짓고 운동장은 바로 옆 축구장을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서초구청 도시계획과장이던 고태규 서울시 물재생계획과장의 아이디어였다. ‘학교 설립·운영규정’에 “공공 체육시설과 인접해 공동 사용할 수 있으면 설립이 가능하다”고 돼 있어 교육청도 받아들였다.

매헌초교 전교생 757명 중 신입생을 제외한 학생들은 올 3월 대부분 인근 학교에서 전학을 왔다. 학생들은 월~목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운동장을 독점 사용한다. 체육 담당 양희동 교사는 “수업 중 잔디구장으로 들어오는 주민도 있지만 협조를 구하면 대부분 이해한다”며 “금요일과 토요일은 체육 수업을 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운동장을 돌려준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끌어온 학교 건립 숙원사업이 ‘공원 활용’ 아이디어로 61억원의 예산을 절감하며 해결된 것이다.

◇대안 될까=교육과학기술부가 파악한 과밀 초등교는 서울시에만 70곳, 경기도에 45곳이 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갈현초교는 6학년이 16반까지 있다. 화장실로 쓰던 공간을 교실로 개조했을 정도다. 교과부 양현오 사무관은 “서울·수원·안산 등 구 도심은 주택을 허물지 않는 한 새 학교를 지을 수 없어 해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교과부에 따르면 2001~2006년에 801개 학교의 신설 수요가 생겨 학교 용지 마련 비용만 5조4550억원으로 불어났다. 학교 용지비는 정부와 지자체가 반반씩 부담해야 한다. 지자체가 미룬 금액만 1조8000억원이다.

매헌초교가 모델이 될 수 있지만 문제점도 지적된다. 학부모 황철순(48)씨는 “공원 활용이 아이들 정서에는 좋지만 아동 대상 각종 범죄 사건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걱정 된다”고 말했다. 학교 측도 이런 점을 감안해 주변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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