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IE] 뱃속 아기 성별 미리 알게 된다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태아의 성별(性別) 공개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부합할까, 어긋날까.

최근 헌법재판소가 ‘태아 성 감별 금지법’의 위헌 여부를 가리기에 앞서 공개 변론을 열었다. 위헌 논란이 불거진 것은 2005년 한 예비 아빠가 의사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 헌법소원을 내면서다. 같은 해 성 감별로 면허 정지된 의사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태아 성 감별이 왜 문제가 되는지 살펴보고 찬반 양론을 짚어본다.

◇태아 성 감별 금지법이란=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부모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을 금지하는 현행 의료법 제20조를 일컫는다. 이 조항은 의료법이 일부 개정된 1987년 신설됐다.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려주면 ‘선택 출산’을 위한 낙태가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초음파 검사가 보편화하면서 태아의 성별을 쉽게 알 수 있게 된 게 그 배경이다. 이 조항은 2007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일부 문구만 수정된 채 그대로 유지됐다.

◇왜 문제가 되나=태아 성 감별 금지 조항이 위헌으로 판결되면 낙태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부모가 원치 않는 성(性)의 태아를 낙태시키는 일이 잦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돼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되고 남녀 성비 불균형, 나아가 인구 관리 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하지만 성 감별과 낙태는 개인의 문제이지 국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태아 생명권을 정부가 떠안아야 할 문제는 아니며 낙태 역시 개인이 정할 문제라는 주장이다. 미국에서는 1973년 한 여성이 경제난으로 아이를 기를 수 없자 “낙태는 개인 권리에 속한다”며 소송을 벌여 승소한 바 있다.

◇‘태아 성 감별 고지’ 찬성론=박상훈(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예비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알권리에 해당한다”며 “태아의 성을 알고도 낙태를 하지 않는 부모가 많은데 그들의 기본권까지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찬성론자들은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려준다고 해서 남녀를 구별해 낳는 ‘선택적 낙태’가 이뤄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2005년에 이뤄진 약 34만 건의 낙태 가운데 90% 이상이 성별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는 보건복지가족부의 통계를 근거로 삼는다.

또 우리 사회가 남아만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들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태아 성 감별 금지법이 제정된 1987년 남아 100명당 여아의 비율이 113.3명이었으나 2006년에는 106명으로 줄어 자연적인 성비에 가까워졌다. 서울대 법학과 양현아 교수는 “남아 선호를 막기 위한 태아의 성 감별 고지를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 후에도 7년 동안 남아 초과라는 성비 불균형이 계속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은 의료 행위의 일부분이므로 이를 금지하는 것은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반대론=이 규정이 폐지되면 자녀를 한 명만 낳으려는 추세에 남아 선호 경향이 겹쳐져 낙태가 늘 수밖에 없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특히 셋째 아이의 성비가 2006년 여아 100명당 남아 121.8명으로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점을 감안하면 성 감별 고지가 허용될 경우 낙태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 곽명섭 사무관은 “연 34만 건의 낙태 가운데 2500건가량이 원치 않는 성 때문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성별 고지가 합법화되면 많은 태아가 낙태로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박상은 샘 안양병원의료원장은 “성 감별에 의한 실제 낙태 건수는 통계 수치보다 훨씬 높으므로 현행법을 유지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론자들은 세계 최하위 출산국으로서 인구 증가를 중요한 국가 목표로 삼은 만큼 부모의 알권리보다 태아의 ‘살 권리’가 더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향후 전망=태아 성 감별 고지 허용 여부는 임신 기간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산모의 건강을 해칠 우려 때문에 사실상 낙태를 할 수 없는 임신 8~9개월 기간에는 성별을 알려줘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태아 성 감별 고지와 낙태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객관적인 통계가 먼저 확보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즉, 낙태가 사회·경제적 이유로 발생하는지 성별 선택의 문제로 이뤄지는지 가늠할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정확히 내리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장욱 기자

‘태아 성 감별 고지’ 위헌 논란의 핵심 쟁점

▶태아 성 감별 고지를 금지하는 것은 부모의 행복추구권, 알권리를 침해하는가
▶태아의 생명권은 부모의 행복추구권, 알권리보다 우선하는가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려주면 낙태가 늘어나는가
▶남아 선호 사상이 우리 사회에 아직 존재하는가
▶의사가 부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막는 것은 직업의 자유를 해치는가


우리들의 눈

이래서 찬성
‘성 감별과 낙태 증가’ 뚜렷한 증거 없어

태아의 성 감별을 금지하는 현행법은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한 남녀 성비의 불균형을 막으려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1987년 법 제정 당시에는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해 성 감별 결과가 낙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법이 요즘에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즉, 태아의 성 감별을 부모에게 알려주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낙태가 자주 일어나는 사회에서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태아의 성이 문제가 돼 낙태를 하는 사유는 극히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 감별에 따른 낙태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결국 성 감별과 낙태의 증가는 무관한 셈이다. 이렇듯 성 감별 고지가 낙태의 직접 원인이 아닌 점을 감안할 때 이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태아의 성 감별 금지법 도입 배경이 되는 남아 선호 경향도 많이 퇴색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들·딸 구별 없이 한 자녀를 낳는 저출산 사회로 접어들었다.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을 일컫는 ‘알파걸’이 신조어로 등장할 정도로 여성의 지위도 높아졌다. 더 이상 남아 선호라는 케케묵은 명분으로 태아의 성 감별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태아의 성 감별에 따른 낙태가 우려된다면 법 체계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기보다는 낙태의 위험성과 비도덕성을 알리는 교육을 강조하는 게 좋을 듯 싶다.

최원호 학생기자(민족사관고3)

이래서 반대
부모 알권리가 태아 생존권 위협할 수도

태아 성 감별 금지법이 21년 만에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른 것을 계기로 현재 곳곳에서 찬반 토론이 한창이다. 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모의 알권리와 행복추구권을 근거로 든다. 임산부가 자신의 뱃속 아기의 성별을 알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성을 알고 옷을 사며 이름을 짓는 것은 예비 부모가 당연히 누려야할 행복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부모로서 알권리와 행복추구권을 위해 배속 태아의 성별을 알고 싶어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이보다 남아를 골라 낳기 위해 태아의 성을 미리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아직도 셋째 아이의 임신은 아들을 낳기 위해서란다.

태아의 성별 고지가 금지된 요즘에도 성 감별에 의한 낙태가 수천 건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법 조항을 없애면 그 결과가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태아 성별에 대한 부모의 알권리는 일종의 호기심에서 출발한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 권리가 태아의 생존권보다 우선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태아의 성을 부모에게 알려주는 행위 자체보다 낙태를 하는 예비 부모들의 의식이 문제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 감별이 낙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이를 방치한다면 생명을 경시하는 데 우리 모두 일조하는 셈이다.

김율리 학생기자(명덕외고2)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