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교가 “프렌들리 국회의원 모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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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재즈카페에선 ‘뉴질랜드 와인과 재즈의 밤’ 행사가 열렸다.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 주최로 열린 이 행사는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제인 쿰스 뉴질랜드 대사의 남편인 재즈 가수 팀 스트롱은 이날 직접 마이크를 잡고 공연했다.두 사람은 이미 ‘대사 아내와 가수 남편’커플로 주한 외교가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뉴질랜드 대사관이 자국 와인과 재즈를 홍보하기 위해 마련한 이 행사엔 와인 관계자들 외에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도 초청됐다. 이 의원은 “왁자지껄한 행사는 아니지만 뉴질랜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이 행사뿐 아니라 뉴질랜드가 우리나라 의원들을 상대로 벌이는 각종 행사들에 참가할 때면 작은 정성이지만 큰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대사관은 15일 헬렌 클라크 총리의 방한에 맞춰 환영 리셉션도 개최한다. 이 행사에도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등 여야 의원 상당수가 초청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1~20일 호주와 뉴질랜드를 잇따라 방문하는 것도 뉴질랜드의 이런 외교적 노력의 하나로 해석된다.

18대 총선 이후 주한 외교가의 움직임이 이렇게 바빠졌다. 18대 당선인들을 향한 ‘인맥 관리’가 시작된 것이다. 역시나 미국·중국·일본 등 3강국의 활동이 눈에 띈다. 가장 활발히 나선 곳은 미국 대사관이다.

지난달 28일 미 대사관저에선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 주재로 18대 총선에서 승리한 여야 당선인들을 위한 축하 리셉션이 열렸다. 한나라당 전여옥·나경원, 통합민주당 김부겸·박영선 의원 등 재선 이상 인사들 외에도 한나라당 조윤선·배은희 당선인 등 전문가 그룹의 비례대표 초선 상당수가 참석했다.

행사 시작에 앞서 버시바우 대사는 입구에 서서 초청한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초청 인사들이 모두 리셉션장에 도착하자 버시바우 대사는 “여러분의 당선을 축하하고 환영한다. 앞으로 한·미 관계 발전에 같이 노력해 나가자”라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버사바우 대사의 부인과 함께 대사관저를 거닐며 관저의 아름다움 등을 화제 삼아 10여 분간 얘기했다고 한다.

미 대사관은 6일 대사관저에서 여는 음악회에도 18대 국회에 처음 등원하는 당선인 여러 명을 초청했다. 이에 대해 대사관 관계자는 “이런 행사 등을 통해 미국 정부와 한국 의회가 서로 더욱 깊이 이해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닝푸쿠이 중국 대사는 7일 자신의 관저에서 한나라당 구상찬 당선인을 비롯한 4명을 초청해 만찬 행사를 연다. 구 당선인은 한나라당에서 알아주는 ‘중국통’으로 총선에서 당선된 뒤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축하 전문까지 받았을 정도다. 만찬은 평소 구·당선인과 친구처럼 지내는 닝푸쿠이 대사가 구 당선인의 등원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같은 당의 이혜훈 의원과 유일호·김금래 당선인 등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게이에 도시노리 일본 대사는 이달 중순 한나라당 박진 의원 등을 초청해 축하 만찬을 한다. 일본 대사관 측은 박 의원에게 “초선 의원 몇 명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홍정욱·조윤선 당선인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20일 건국 60주년 기념 만찬 행사를 여는 이스라엘 대사관 측도 당선인 상당수를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 외교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국회 통외통위 한나라당 간사인 진영(서울 용산) 의원은 “개인적으로 지역구 현안 중 미 대사관 부지 이전 문제가 있어 초청에 잘 응하지는 않지만 각국 대사관의 이런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우리나라 해외 공관도 이 같은 적극적 외교 활동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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