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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남·한국 2강…英 ‘포트메리온’ 급부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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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30면

혼수품으로 빠지지 않는 게 그릇 세트다. 1970, 80년대 행남자기나 한국도자기의 8~10인용 그릇 세트는 혼수품 1호였다. 대가족이 많고 그릇이 귀하던 시절의 일이다. 행남자기 관계자는 “당시 공장 앞에 물건을 사려는 도매상인이 장사진을 이루곤 했다”며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90년대 식기의 대명사는 ‘코렐’로 바뀐다. 미국 브랜드인 코렐은 강화 유리로 만들어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워 혼수 시장을 장악했다.

그릇 브랜드 어떤 게 있나

2000년대 맞벌이 부부가 늘고 외식과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식기 시장의 판도는 다시 바뀌고 있다. ‘그릇을 보면 집주인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 회자될 만큼 그릇은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인테리어 용품으로 격상됐다. 풀 세트를 한꺼번에 사기보다 맘에 드는 제품을 한두 개씩 장만하는 주부들이 늘어난 것도 최근의 변화다. 혼수용 그릇 세트도 4~6인용이 중심이다. 광주요 등 고가 브랜드에서는 2인용 혼수품까지 내놨다.

유명 패션 브랜드 제품도
국내 그릇시장에서 최근 가장 급부상한 브랜드는 영국 ‘포트메리온’이다. 이 브랜드는 유독 한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양 식기엔 원래 국그릇이나 밥그릇이 없다. 평평한 접시와 커피잔, 찻주전자, 샐러드 그릇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포트메리온은 한국 소비자를 겨냥해 국그릇과 밥그릇까지 생산하고 있다. 한국에서 연간 300억원 훨씬 넘는 매출을 올리다 보니 아예 전용 제품을 만들게 된 것이다. 행남자기(470억원)와 한국도자기(450억원)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포트메리온을 수입하는 한미유나이티드의 정주영 계장은 “국내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직접 하는 등 제품 개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영국의 로열 앨버트·웨지우드, 독일의 빌레로이앤보흐, 미국의 레녹스, 덴마크의 로열코펜하겐 등이 들어와 있다. 개성을 추구하는 일부 주부는 에르메스·베르사체·불가리 등 유명 패션 브랜드가 생산하는 특별한 식기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이런 브랜드는 커피잔 하나가 50만원 할 정도로 고가다.

고급 전통 도자기 수요 늘어
고급 전통 도자기들을 찾는 소비자도 하나 둘 늘고 있다. ‘박영숙요’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용한 전통 도자기 브랜드로 서울 강남 등지의 부유층 주부에게 인기다. 맑고 투명한 색상이 특징. 찻잔 하나에 30만원대, 밥그릇 하나에 20만원대를 줘야 한다. 신진 작가 작품을 주로 취급하는 서울 신사동의 ‘우리그릇 려’ 매장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자칭 ‘한국적인 현대 아트 도자기’라는 점을 내세운 이 매장의 주 고객은 젊은 주부다. 전통 도자기 가운데 가장 먼저 상업적으로 성공한 브랜드는 ‘광주요’다. 경기도 이천 지역의 작은 공방으로 출발한 광주요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전통 도자기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서울 재동의 ‘서미 앤드 투스’는 서미갤러리의 홍송원 관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예술성이 높은 국내 전통 식기들을 판다.
현대백화점 김재현 식기 담당 바이어는 “주부라면 누구나 손님을 접대할 때 특별한 그릇을 선보이고 싶어 한다”며 “고가 수입 브랜드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고급 전통 도자기의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東에서 西로, 西에서 東으로
‘본 차이나’가 좋은 도자기의 대명사였던 때가 있었다. 본 차이나는 소의 뼛가루로 만든 도자기라는 뜻이다. 본 차이나는 1800년대 영국에서 개발됐다. 소뼈 가루를 흙에 섞어 도자기를 만들면 흙만으로 만든 일반 도자기보다 훨씬 튼튼해진다. 그래서 소 뼛가루가 50% 이상 들어간 제품에 ‘본 차이나’라는 인증을 붙이게 됐다. 서양인이 잘 깨지지 않는 그릇을 중시하는 것은 그들의 식문화와 관련이 깊다. 나이프로 긁고 포크로 찍어도 흠집이 나거나 깨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동양인은 제품의 강도보다 색깔이나 형태를 중시한다.

요즘엔 유럽산 도자기가 고급품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1600년대 말까지 최고품은 중국산이었다. 특히 유럽 왕족이나 귀족층 사이에서 중국산 도자기는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였다. 유럽의 상업 도자기는 1709년 독일 마이센 지역에서 처음 등장했다.
한국에선 1940년대 초 행남자기와 한국도자기가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다. 흙으로 빚고 문양을 새겨 가마에 굽는 전통 제조 방식 대신 서양식 대량생산 체제를 도입했다.

서양 도자기처럼 새하얀 그릇이 해방 이후 국내 식기 시장을 장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정희 팀장은 “도자기는 원래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해졌지만 서양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기술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며 “최근엔 동양의 도자기 문화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서양 도자기 회사와 어깨를 견주게 됐다”고 말했다. 마침 세계 도자기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 서소문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영국 국립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소장 세계 명품 도자전’이다. 6월 23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에선 중국 고대 도자기부터 20세기 유럽·미국 도자기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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