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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에 감성 입히려 100만 평 아트밸리 만들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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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28면

CEO의 일요일 ①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 쓰는 사람들.’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흔히 이렇게 부른다. CEO에겐 월·화·수·목요일 다음에 금·금·금요일이 기다린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바쁘다는 얘기다. 하지만 CEO가 바쁘게 지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창조적 경영을 하려면 자기만의 투자가 필요하다. 기업의 미래를 R&D(Research & Development·연구개발)가 좌우하듯 CEO의 경쟁력은 R&D(Refresh & Dream·재충전과 꿈)에 달려 있다. 자신의 R&D를 위해 주말을 200% 활용하는 CEO들을 소개한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났을 때 그는 산을 찾기 시작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산에서 회복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이어지고, 길목마다 쉴 곳이 있는 산. 그곳에서 그는 인생을 되돌아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찾았다. 윤영달(63)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의 얘기다. 윤 회장은 크라운제과가 화의를 거쳐 정상화됐을 때도, 크라운제과의 두 배가 넘는 덩치의 해태제과를 인수할 때도 매주 산에 올랐다.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했었죠. 하지만 저는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등산을 하면서 길러진 호연지기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해태제과 인수 작업이 한창이던 2004년, 그는 크라운제과 임직원을 이끌고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대만 옥산(해발 3952m)을 등정하기도 했다. 이듬해 해태제과 인수에 성공한 뒤 그가 해태제과 임직원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 등산화였다.
등산광인 그는 요즘엔 토요일마다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 임직원과 함께 경기도 송추에 간다. 그곳에 있는 크라운제과 연수원 주변을 ‘아트밸리’로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연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 굽이굽이엔 21개의 조형물이 서 있다. 전 임직원이 조를 짜서 주제를 정하고 작품을 기획해 만든 것들이다.

3일 오전 여느 토요일처럼 임직원 20여 명과 이곳을 찾은 윤 회장은 싸리나무로 만든 커다란 닭 모양의 작품 앞에 멈춰 섰다. “알을 품고 있으니 암탉인데 머리엔 수탉의 벼슬이 있군. 수탉이 알을 품고 있는 꼴이니 좀 이상한걸.” 윤 회장의 말에 함께 산을 오르던 한 직원은 “요즘엔 남자도 집안일을 해야 사랑받을 수 있으니 이상할 것 없습니다”고 대답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임직원 사이에 웃음보가 터졌다. 이어 수탉이 알을 품은 게 이치에 맞느냐 안 맞느냐를 놓고 한바탕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산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비보이, 냉동가스 통으로 만든 종 등 유머러스한 작품들이 나타난다. 그때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앞으로 기울어 걱정이다”

라거나 “저 작품 만드느라 생전 처음 톱질을 해봤다”라는 등 얘깃거리가 이어진다. 윤 회장과 임직원의 노력 덕분에 이곳은 가벼운 산행을 하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원으로 변모 중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도 이곳의 자랑이다. 수령 50~70년짜리 소나무 수백 그루가 산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윤 회장은 이 소나무를 직원들에게 분양해줄 계획이다. 직원 각자가 자신의 나무에 이름을 붙이고 주변을 가꿔 작은 소나무 정원으로 가꾸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부근 소나무는 가지들을 좀 솎아내야겠는 걸”하며 윤 회장은 긴 톱을 들고 머리 위 수m 높이에 달린 소나무 가지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다음엔 맨발 산책로를 내기로 한 곳을 돌아보며 산책로에 깔 석재가 얼마나 도착했는지 체크했다.

서울에서 가깝고 규모가 330여만㎡(100여만 평)에 이르는 이곳 산야에 골프장을 만들라는 제안이 끊이지 않는단다. 하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아트밸리 조성사업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어느 정도 공원으로 틀이 잡히면 고객에게도 개방할 방침이다.
“고객과 임직원이 즐길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합니다. 지금 당장은 골프장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지 모르지만 20, 30년 후엔 자연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더 가치 있을 겁니다.”

그가 임직원들을 자연 속으로 끌어내는 것은 감성을 풍부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몸을 움직여 나무를 깎고 소나무와 채소를 가꾸면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자유로움을 통해 남다른 감성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자는 꿈과 행복을 주는 감성 제품입니다. 과자가 기피식품이나 유해식품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죠.”

그가 감성 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꿈을 되찾아 줄 수 있는 과자, 먹고 마시는 게 아니라 느끼고 즐기는 과자를 만들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임직원을 문화예술 공연장으로 내몰고 있다.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연중 내내 감상할 수 있도록 아예 서울 남영동 크라운·해태제과 본사 1층에 ‘쿠오리아’라는 갤러리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락음 국악단’을 창단해 ‘창신제’라는 국악 축제도 열고 있다. 지금까지 수십 회에 걸쳐 해설이 있는 오페라, 찾아가는 음악회 등의 음악 공연을 열었으며 닥종이 공모대전, 흙으로 만드는 인형 공모대전 등의 행사도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일을 오래한다고 해서 잘하는 게 아닙니다. 좋은 아이디어란 순간에 떠오르죠. 일이란 몰입이 중요합니다. 저는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문화 공연을 많이 보게 합니다. 일에 찌들어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으니까요.”

그에게 주말은 새로운 창조의 시간이다. 토요일엔 임직원과 송추 연수원 주변 산을 오르거나 아트밸리를 돌아보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력을 얻는다. 일요일엔 손자들과 인형극을 보거나 수영장에서 놀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큰손자와 놀면서 느낀 체험교육의 중요성은 그에게 공원 조성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주말에 가만히 누워 쉰다고 해서 피곤이 풀리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는 것은 아니죠.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새로운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게 더 활기 있는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해태제과를 인수한 지 올해로 3년째. 어떤 과자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그저 “더 좋은 과자가 어떤 과자인지 찾아가는 중”이라고 답한다.
그가 찾은 답은 직원들이 꿈을 꿀 수 있어야 고객에게도 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해태제과 인수 첫해인 2005년 무려 170일간의 파업사태로 23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지독한 성장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해태제과는 지난해 흑자로 돌아서며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 갑자기 한식구가 되면서 어색하기만 하던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 직원들은 함께 공원을 만들고 문화 공연을 보면서 화합을 다지고 있다. 아직은 눈에 띌 만한 히트 상품이 나오거나 획기적으로 매출이 늘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앞으로 반드시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직원들의 사고가 자유롭고 유연해지면서 영업사원들이 제품을 진열하는 것부터 기발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게 반갑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즐기는 기업을 지향합니다. 마치 구불구불 자라는 소나무가 곧게만 자라는 벚나무와 다른 멋을 지니는 것과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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