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정부 하는 걸 보면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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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의외의 인물이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다. 이 의장은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위해 추진하는 추가경정예산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환율과 금리에 대한 정부 개입에도 딱 부러지게 ‘안 된다’고 했다.

경제 사령탑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40년 지기이자 정부와 호흡을 맞춰 정책을 이끌어야 할 위치에 있는 그가 왜 이럴까.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이라는 애초 약속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정부 정책에 대해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한나라당)가 지향하는 선진국 만들기 방식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근로자의 날인 1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추경을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국민에게 약속한 작은 정부, 알뜰한 정부에 어긋난다. 노무현 정부가 편성한 올해 예산을 방만하다고 비판해 왔는데 거기에 더해 추경까지 하면 우리는 뭐가 되나. 야당에서 여당 됐다고 얘기가 달라지면 누가 믿겠나. 둘째는 국가재정법상 추경 편성 요건이 안 된다. 법치주의를 해야 하는데 5년 이상 고생해 고쳐 놓은 법을 집권하자마자 손대면 말이 되는가.”(한나라당은 지난해 정부의 추경 편성 요건을 대폭 강화한 국가재정법 개정을 주도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내수를 진작할 정도로 엉망진창은 아닌데 다른 방법은 놔두고 왜 정부 몸집을 키우는 방식으로 하려는지 모르겠다. 노 정부 때하고 다를 게 없다. 중요한 건 경제 체질의 약화다. 근본대책을 마련해 몇 년간 노력해야 하는데 초기부터 이러면 어떻게 체질 개선을 하겠는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가 위기를 부추기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재정부 쪽에선 추경이 ‘경기 부양이 아니고 경기 정상화’라고 한다.
“역사상 처음 쓰는 말인 듯싶다. 그러면 그동안은 경기가 비정상이었다는 말인가. ‘세계 잉여금이 많으면 경기가 위축되니 다 써야 한다’는 논리인데 그게 왜 생겼는가. 예정에도 없던 세금을 거둔 것이다. 그걸 시정해야지, 다시 돌려준다면 결국 정부가 쓰겠다는 건데, 어디에 돌려준다는 계획도 없다. 논리도 계속 바뀐다. 처음에 경기 부양한다고 말을 꺼냈고 총리는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 하겠다고 했다. 이젠 경기 정상화라고 한다.”

-요즘 정책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처음 얘기한 ‘시장경제’와는 좀 달라 보인다.
“시장경제 원리는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민간의 힘을 믿고 자율을 주는 거다. 공정경쟁 시키고 책임을 지우되 정부는 자기 역할만 하면 된다. 자꾸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정책을 쓰는 것은 자기 임기에 뭔가 치적을 내려는 욕심 때문이다.”
-환율이나 금리 문제에서도 이미 엇박자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정책 방향에 대한 이견인가, 방식에 대한 이견인가.

“방식이다. 환율·금리는 한국은행이나 시장이 자기 돈 갖고 알아서 움직이면 되는 거다. 외환위기 등 긴박한 상황도 아닌데 이 정도에서 시장이 굴러가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시장경제를 하겠는가. 우린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다. 시그널을 확실히 줘 불확실성을 덜어야 한다. 초기 내각은 기초 다지는 거 열심히 하고, 각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환경을 만들면 된다. 앰풀 주사 놓듯이 하지 말고….”
-7% 성장 등에 너무 집착해 조급해한다는 지적이 있다.

“대선 공약 만들 때 내가 대운하처럼 ‘747’도 빼라고 해 충돌이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했다. 결국 공약이라고 하지 말고 비전이라고 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공약도 아닌데 거기 매달릴 이유는 없다. 지금 상황은 좁고 울퉁불퉁한 옛길을 달리는 것과 같다. 좋은 차로 빨리 목표 지점에 도착해야 한다고 서두르면 차만 망가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길부터 다듬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물가와 성장 사이에서 정책적 선택이 쉽지 않다.
“지금 당장 고르라면 물가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생산성을 올리면 물가도 잡고 성장도 할 수 있다. 이걸 빨리 하려면 공공부문 개혁과 규제 혁파, 지방 분권을 해야 한다.”

-감세도 정부가 처음 의욕적으로 얘기하는 것만큼은 안 되는 것 같다.
“그러게 참….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고 있다. 감세 때문에 재원이 문제가 된다고 하면서 한편에선 세금이 남아서 돌려준다고 한다. 감세하면 성장률을 올려 재정기반을 확충할 수 있다. 정말 세수가 불안하면 공약한 대로 다 하지 말고 중소기업과 서민용만 해주자, 물가 부담 덜어주고 숨 좀 돌리게 해주자고 했다. 그것도 안 되겠다면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작은 정부를 위해 세출을 줄이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안은 안 나온 것 같다.
“대선 공약에 힌트가 약간 있다. 예산 동결 7조2000억원, 낭비 요인 척결 6조8000억원, 최저가 낙찰제 확대와 민자 사업 확대 6조원 등 모두 20조원을 줄인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재정부 간부들 얘기를 들어보면 잘 안 될 것 같다. 당에선 중복사업 정리, 공기업 출자·출연 대폭 축소 등의 구체적인 안을 갖고 있지만 정부 때문에 과연 되겠는가. 보나마나 뻔하다. 예산 줄면 복지나 서민들이 어려워진다는 핑계를 대면서 안 된다고 할 거다.”

-정책 수단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차이처럼 보인다.
“지금은 일종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다. 생산성밖에 답이 없다. 노 정부 때 해오던 총수요 확충 방식으론 안 된다. 지난 10년간 거의 매년 추경하고 외국환평형기금으로 환율을 방어하고, 돈 풀어 금리를 낮췄다. 지금도 또 그렇게 하자는 거다. 요즘 재정부 하는 걸 보면 겁이 난다. 정부 기구 짤 때 재정부에 예산 기능도 줬다. 재정 건전화와 효율성을 위해 힘을 몰아준 건데 운용을 거꾸로 한다. 기능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뉴타운 등으로 부동산 정책이 혼선을 겪고 있는데.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는 투기 수요가 제법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자금도 있다. 부동산이 오르면 국가 경쟁력을 올리기 힘들다. 재건축과 재개발, 건축 규제, 세제, 공시지가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지방은 상황이 심각하니 좀 빨리 해줄 필요가 있다. 궁극적인 방향은 부동산도 시장의 힘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은 서민 부동산 쪽에 집중해야 한다. 값싸고 품질 좋은 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게 부동산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다.”

-이달 말 의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당의 입장이 그대로일지 궁금하다.
“궁금할 거 같다. 그때 가서 (당의 입장이) 바뀌면 당이 잘못되는 거고…. 정몽준 의원도 ‘당도 사람도 다 그대론데 정책이 바뀌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지 않나.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그보다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겠느냐. 사실 정부하고 부딪치는 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당의 정체성이나 의회주의를 지키는 뿌리 역할을 하자는 건데…. 의장 그만두고 쉬고 싶다. 선거, 인수위, 집권 뒤까지 사고 치는 거 뒷감당하느라 정신없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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