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무원과 관변학자들이 정부 회계 다 망친다”

중앙일보

입력

■ 지자체 회계 시스템 놓고 ‘회계사-국립대 교수’ 8년째 소송 중
■ 서원교 회계사 “공무원들이 진실을 숨기고 있다” 주장
■ 모 대학교수 “서 회계사 개발한 회계원리는 노벨상 감”
■ 행안부 “실체 없는 주장일 뿐”… 진상조사 외면하는 정부, 왜?

월간중앙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구축돼 있는 회계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혁신적이고 쉬운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내놓고 자랑하지 못한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어느 신지식인의 절규를 통해 복잡한 속사정을 들어봤다.


“제 인생은 2001년에서 멈췄습니다. 인생이 망가져 버렸어요. 그래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서원교(48) 회계사에게 2001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운이 나쁘지 않았다면 그는 세계 회계학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됐을지 모른다. 운이 나쁘지 않았다면 큰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운이 나쁘지 않았다면 그는 8년여의 세월을 송사에 매달려 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생을 바쳐 가꿔온 사업을 빼앗겼고, 수많은 기회를 잃었고, 시간을 잃었다”고 했다. 더욱 중요한 것.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천주교 신자라는 그가 하는 말이다.

불행은 그가 신지식인에 선정된 2001년 7월을 전후해 찾아왔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인생은 ‘봄날’ 같았다. 1984년 공인회계사가 된 그는 1990년대 중반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혁신적 회계원리를 창안한다. ‘AIA(Activity Information Accounting :활동정보회계)’라는 회계 원리다.

회계는 흔히 기업의 언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언어는 매우 어렵다. 서 회계사는 “‘AIA’의 최대 강점은 회계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변·차변 같은 어려운 회계 지식이 없어도 한 번의 입력으로 대차대조표·손익계산서 등 각종 재무제표를 산출해낼 수 있다.

세계적 회계 시스템에서도 제공하지 못하는 ‘직접법 현금흐름표’ ‘원가보고서’도 한 번의 입력으로 산출된다는 것이 서 회계사의 설명이다. 이 원리는 당시 여러 논문에 인용됐다. 현 산림청장인 하영제 청장도 그의 박사학위 논문(2000년)에 ‘AIA’를 인용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차변과 대변 입력이 없는 복식부기’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15세기 이후 줄곧 써온 복식부기의 개념을 완전히 깨버린 이 회계원리에 대해 한 대학교수는 1998년 말 열린 지방자치단체 회계제도 관련 세미나에서 “AIA는 기존 회계와 전혀 다른 방식이며, 회계학분야의 노벨상감일 것”이라고 밝혔다. 서 회계사는 미국과 한국에서 특허를 취득했다.

소문이 나자 청와대에서 그를 불렀다. 기존 단식부기 회계 방식에서 선진국처럼 복식부기로 정부 회계제도를 바꾸려는 청와대의 눈에 그가 들어온 것이다. 1998년 10월 그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비서관을 만나 ‘AIA’를 설명했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그 해 12월2일 서원교 회계사로부터 ‘AIA’에 대한 설명을 들은 김태동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바로 다음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대통령으로부터 ‘즉각 추진해 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시간을 좀 뛰어넘자. 지난해 전국 지자체는 복식부기 회계 시스템 도입을 완료했다. 6년여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방식이다. 지방 회계 담당 공무원 누구나 간단한 교육만 받으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시스템이다.

강원도의 한 지자체 회계담당 공무원은 “차변·대변을 일일이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고 나간 돈 항목의 코드만 입력하면 되기 때문에 대단히 쉽다”고 말했다. 그는 “차변·대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입력하는 단계에서는 전혀 필요 없고, 그냥 원리 정도만 교육받는다”고 말했다.

‘혁신적 회계원리’로 신지식인 선정

이런 방식은 외국에서도 보고된 적이 없다. 회계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조금만 잘해도 확대포장해 자랑하기 좋아하는 정부가 이 혁신적 지자체 회계 시스템 방식을 대내외에 홍보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새로운 복식부기 시스템을 지자체에 도입했다는 보도자료는 쌓였지만 정작 전 세계 회계학회가 주목할 만한 ‘쉬운 회계처리 방식’이라고 자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왜일까?

다시 1998년 말로 돌아가자. 대통령의 지시가 있은 후 정부는 1999년 2월 지자체 복식부기 도입 시범사업 실시계획을 수립한다. 같은 해 4월 부천시와 서울 강남구청이 시범 실시기관으로 지정된다. 본격적인 연구용역(1차)은 1999년 12월에 시작됐다.

당시 1차 용역은 삼성SDS·산동회계법인·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서 회계사가 운영하는 ‘이스턴컨설팅’은 규모가 워낙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삼성SDS의 하도급업체 성격으로 이 사업에 참여했다.

2001년 3월 개발이 완료됐다. 개발된 시스템 명은 ‘LADI(라디)’였다. ‘LADI’는 서원교 회계사가 개발한 ‘AIA’ 원리를 바탕으로 개발됐다(<월간중앙>은 ‘LADI’에 관한 용역 결과 보고서, 과업지시서, 컨소시엄 간 계약서, 각종 공문서 등을 통해 ‘AIA’가 지속적으로 언급된 것을 확인했다).

1차 용역 개발 후 부천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서에도 ‘LADI는 활동식 복식부기(AIA)를 채택했습니다. 사용자 측면에서 AIA 채택이 잘된 선택이었습니까’라는 항목이 있다. 당시 응답자의 97%가 ‘잘된 선택’이라고 답했고, 74.3%는 ‘사용이 쉽다’고 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 회계사는 이후 닥칠 기막힌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도급업체로 참여했지만 핵심 기술을 갖고 있던 서 회계사는 2001년 11월부터 시작된 2차 용역에서 갑자기 배제된다. 동시에 ‘AIA’라는 단어도 사라진다.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AIA’ 자체가 부정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서 회계사는 황망했다. 1년 가까이 부천시에서 상주하면서 개발했고, 2차 용역까지 구두약속을 받았는데,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된다. 2차 용역에는 이스턴컨설팅이 수행하던 용역업무를 G사가 대신 맡았다. 그런데 이 G사에 서원교 회계사가 운영하던 이스턴컨설팅의 대리사장이던 지방국립대 K교수와 부하직원이던 P씨가 깊숙이 관계하고 있었다.

이후 G사를 포함한 2차 용역 컨소시엄은 공문을 통해 ‘연구용역(1차 용역)에서 AIA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자동분개방식으로 정상화한다’고 밝히고 있다.

활동방식과 자동분개방식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종래 복식부기에서는 거래의 기록과 처리 과정에서 차변과 대변이 필수다. 서 회계사의 활동방식(AIA)은 사실상 차변·대변이 필요 없는 복식부기 방식이다.

그래서 개발 당시 여러 학자들이 “회계 파괴” “노벨상 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자동분개는 차변과 대변 중 일부 항목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차변과 대변으로 분개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자동분개방식은 ‘복식부기=차변·대변’이라는 전통적 개념에 충실한 것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회계 솔루션 업체들이 이 방식을 사용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1차 용역 때 개발된 ‘LADI’가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다. 일단 ‘AIA’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원가시스템이 삭제돼 버렸다.

당시 정부는 “단순히 복식부기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분석 시스템까지 도입하는 것”을 사업 목적으로 분명히 했다. 그런데 이를 가능하게 하도록 1차 용역 때 개발된 ‘원가시스템’이 더 발전돼야 할 2차 용역에서 삭제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에는 원가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는 법령 정비가 안 됐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1~2차 용역은 그야말로 시범사업이었다. 시범사업을 통해 당초 사업목적에 포함된 원가 시스템을 개발하고, 법령은 이후에 정비해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2차 용역은 2003년 9월 완료됐다. 시스템명은 ‘LADI 2’였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앞서 밝힌 대로 2차 용역 컨소시엄은 ‘LADI 2’에서 원가 시스템을 삭제했다.

특허 침해인가? 일방적 주장인가?

▶서원교 회계사는 자신의 진실을 밝히고, 정부회계 발전을 위해 책까지 썼다.

하지만 2004년 5월 행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복식부기 회계제도 시행과 관련, 원가 산정이 가능해짐에 따라 행정 성과가 자동적으로 드러나는 성과주의 예산제도의 도입이 가능하게 되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발표했다. 행정 원가 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졌는데 말이다.

‘LADI 2’는 이후 ‘DAIS’라는 이름으로 전국 지자체에 구축됐다. 현 행안부 사무관에게 “현재 지자체 회계 시스템은 원가 산정이 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원가 시스템은 내년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회계사는 “당시 1~2차 용역보고서를 토대로 보도자료를 만들다 모르고 착오를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서 회계사는 “이스턴컨설팅이 배제된 후 특허와 영업비밀이 침해당했는데, 이를 공모한 자들이 2차 용역 시스템이 AIA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원가 시스템을 삭제하고, 회계 시스템 명칭도 바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서 회계사는 K교수와 부하직원이었던 P씨가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사문서를 위조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특히 P씨의 경우 서 회계사의 특허와 거의 같은 특허를 특허청에 출원 신청하기까지 했다. 서 회계사는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재판이 쉽게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꼬였다. K교수에 대해 법원은 ‘사문서 위조’ 부분은 유죄를 내렸지만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K교수는 이 사건과 상관없이 재건축조합장을 하면서 횡령했다는 혐의로 고발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현재 검찰은 상고한 상태다.

재판부의 판결을 요약하면 이렇다. “1, 2차 산출물(용역 결과)에 AIA 개념이 적용됐다는 증거가 없고, 용역결과보고서에 매칭테이블(소프트웨어의 핵심 노하우를 담은 설계도)이 공개되었기 때문에 영업비밀 침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법원의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법적 판단이 곧 진실은 아니다”라는 것이 서 회계사의 주장이다.

서 회계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피고인들이 처음에는 AIA 노하우를 담은 매칭테이블 존재 자체를 부인했어요. 피고인과 학맥으로 얽혀 있는 증인(회계학자)도 처음에는 위증으로 일관하다 나중에 매칭테이블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생각을 바꿔 매칭테이블은 이미 공개됐기 때문에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는데, 재판부가 이를 받아준 것 같아요. 하지만 차변·대변의 계정과목이 아니라 업무 코드를 입력해 직접법 현금흐름표를 제공하는 시스템은 전 세계 어디에도 보고된 바 없습니다. 당시 피고인 증인으로 출석한 한 교수도 처음에는 1, 2차 시스템 외에 다른 회계 시스템에서도 직접법 현금흐름표가 제공될 수 있다고 증언했다가 제가 위증죄로 고소하자 검찰조사에서 진술을 바꿨습니다.”

이에 대해 K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AIA라는 것 자체가 별 것 아닌데 서 회계사 혼자 수년째 우리와 공무원, 관계된 교수들을 괴롭히고 있다”며 격노했다. 하지만 K교수는 1998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IA’를 극찬했었다.

서 회계사는 개발에 전념하기 위해 2001년 K교수에게 이스턴컨설팅의 경영을 위임했는데, 그 합의서에도 ‘AIA는 회사의 핵심 역량’이라고 명시돼 있다.

부하직원이었다가 K교수와 함께 G사로 자리를 옮겨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P씨는 “그 사람(서 회계사) 때문에 나도 7~8년을 소송으로 허송세월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K교수와 P씨는 공식 인터뷰를 거절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AIA라는 것 자체가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개인과 개인 간의 특허분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건권 호서대 교수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그는 “학자적 양심과 직책을 걸고 실명을 거론해도 좋다”고 했다.

“서 회계사가 개발한 회계 프로그램은 제가 보기에 세계적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것이에요. 내가 대한회계학회가 발행하는 <회계연구> 편집위원장인데, 독특하고 창의적인 회계방법론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지자체가 사용하는 회계 시스템은 AIA와 사실상 같은 것이에요. 회계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권을 빼앗으려는 사람들한테 서 회계사가 사기당한 것입니다. 솔직히 재판 결과가 그렇게 나올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당시 공무원들 찾아가 이 문제를 토론했을 때도 그들이 인정했거든요. 세계적인 사람이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생각하면 너무 안 됐습니다.”

한 회계학자 “서원교가 사기당한 것”

취재 도중 서 회계사와 수차례 언쟁을 해야 했다. ‘도대체 8년간 당신을 믿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었고, 그는 “회계가 어렵기도 하지만, 진실을 밝힐 만한 사람들은 모두 그들 편”이라고 말했다. “진실도 아닌 일에 8년 세월을 허비했겠나? 당신 같으면 그렇게 하겠나”라고도 했다.

서 회계사는 “정부가 진상조사라도 제대로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은 단순히 개인 간의 특허분쟁이 아니다”라며 “학문적 살인이자 정부 회계 발전 차원에서 엄청난 손실이 일어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생을 걸고 싸우지만 어떤 결과를 맞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놀라운 것은 ‘정부 회계 시스템의 진실’을 다툼해온 지난 8년간 회계학계·행정학계·정부·지자체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면, 애써 외면했거나….

서원교 회계사는 요즘 다시 일어서는 준비를 하고 있다.

“국내 350만 소상공인들은 비싼 회계 시스템 구입비와 위탁비용 같은 회계 처리 비용이 부담스러워 복식부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간이신고에 따른 세무상 불이익을 감수하죠. 이들을 위해 값싸고 손쉬운 복식부기 시스템을 보급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있어요. 어렵게, 어렵게 시스템을 개발해 곧 출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김태윤 월간중앙 기자
pin21@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