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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휴대전화가 소통의 만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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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호모 모빌리쿠스
김성도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436쪽, 1만8000원

다른 사람이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전혀 의도가 없었는데도 그 사람의 직업이나 가족관계, 이런저런 형편까지 알게 되기도 한다. ‘호모 모빌리쿠스’(휴대전화를 생활화한 새로운 인간형)가 맞닥뜨리는 현실의 풍경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의 자기 프레젠테이션’(self-presentation)을 목격한” 것이다. 휴대전화의 이동성 때문에 사적 영역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벌어지는 현상이다.

인류가 경험한 다양한 매체 가운데 휴대전화는 최단 기간에 가장 빠른 속도로 확산된 것으로 꼽힌다. 휴대전화는 전 인류 60억 명 가운데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이 됐다. 기호학자이며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모바일 미디어(휴대전화)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변화를 ‘문학생태학’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한다. 휴대전화를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술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거리·권력·위상·정체성 등에 대한 개인의 자각, 사회적 행동 양식, 사회적 조직방식에 연계된” 현대문화의 주인공으로 본 것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휴대전화가 성공한 데에는 인간이 품어온 ‘편재성’의 욕망이 큰 몫을 했다. 태곳적부터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꿈꿔온 인류가 청각과 목소리를 통해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에도 있을 수 있는 욕망’을 실현하게 됐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는 언어풍경까지 변화시켰다. 모바일 언어는 ‘말하기’와 ‘쓰기’, ‘보기’가 뒤섞인 형식으로 다중매체적 성격을 띤다.

휴대전화를 통해 인간은 진정으로 더 자유로워지고 덜 고독해졌을까. 학자의 꼼꼼한 시선으로 호모 모빌리쿠스의 진화를 살펴본 지은이는 이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고독을 피하기 위해서 만든 휴대전화는 우리를 더욱 더 고독한 존재로 만들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모바일 시대의 사람들이 문자 메시지처럼 짧은 의사소통에 익숙해지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잃고, 진정한 의사소통의 핵심인 ‘이해’와 거리가 멀어졌단다. 그는 또 모바일에 중독되면서 아무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면서도 ‘충만한 고독’으로 내면을 살필 기회도 잃었다고 주장한다. “기계에 위탁해 넋을 놓고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앞으로 정보통신 기술에 생명·문화·환경을 통합하는 생태학적 사유”가 절실하게 필요해진 이유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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