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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레터] 인생 최초의, 최고의 선생님은 ‘부모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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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요즘 미술 전시장이나 음악회를 가보면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이 손님’이 참 많이 눈에 뜨입니다. 유럽의 문화현장에서 노년의 여유를 즐기는 관객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던 제게는 이 차이가 흥미로웠습니다. 자녀가 공부 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엄마들의 애틋한 마음이, 그 뜨거운 열정이 엿보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전에 한 미술 전시장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림 앞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채근하듯이 말합니다. “어서 적어. 공책에다 적으라구.”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꼬마 아이는 엄마에 떼밀려 허둥지둥 공책을 폅니다. 감상평을 적으려는 거지요. 아, 요즘 어린이들은 피곤합니다. 훗날 이 아이가 커서 여가를 즐기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될 수 있을런지요. 부모의 욕심과 열정만으로 교육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간 중에는 자녀 교육법을 조언해주는 책이 적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명문가의 가훈과 유언 31편을 한자리에 모은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정민·이홍식 엮고 옮김, 김영사, 332쪽, 1만3000원)는 우리 조상들이 자식들에게 줄 나무람과 당부를 꼼꼼히 적은 글들입니다. “우야! 나는 도타운 성품을 지닌 네가 좋다. 비록 아직 거칠어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네가 지닌 질박함은 너의 가장 큰 자산임이 분명하다” “상아! 네 공손한 몸가짐을 아비가 사랑한다.” 일곱 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격려해준 조선 중기의 문신 신정(1628~1687)의 유언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배어 있습니다.

『아이의 모든 인생은 가정에서 시작된다』(래리 해리스 지음, 강혜정 옮김, 다산에듀, 284쪽, 1만1000원) 는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게 키우기 위한 14가지 원칙’에 대해 말합니다.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9남매중 둘째로 자란 저자는 “부모님으로부터 존엄, 우정, 신앙, 베풂, 헌신 등 중요한 삶의 원칙을 다 배웠다”고 말하면서요. 비결이 궁금하십니까. 부모님이 “자신들이 자식에게 바라는 삶을 직접 사신” 모습에 있었다고 합니다.

앞서 나온 『부모가 학교다』(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전의우 옮김, 달팽이, 624쪽, 9800원)는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키우라’는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치유하라”는데, 참 소박하지만 어려워보이는 주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많은 책을 사준다고, 미술관에 데려만 간다고 아이가 똑똑해지고 훌륭해지는 것은 아닐테지요? 얼마전에 읽었던 책 『공부도둑』(생각의 나무)에서 장회익 선생님(서울대 명예교수)은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하면 공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책을 재미있게 보시던 부모님 모습에서 책읽는 즐거움을 배웠다고요.

『아이의 모든 인생은…』의 저자 해리스는 자신이 쓴 책을 “내 인생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선생님”인 부모님에게 바친다고 썼습니다. 멋지고, 여운을 남기는 머리말이었습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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