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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어린이책] 올 어린이 날 추천할만한 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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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너는 나의 달콤한 □□ 
이민혜 글, 오정택 그림, 문학동네
232쪽, 9800원, 초등고학년

6학년은 참 모를 존재다. 아직 아이인가 싶다가도 어느새 이렇게 자랐나 싶을 정도로 대견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6학년은 우선 겉모습부터 다르다. 자리에 앉아도 늘 약간 기댄 채 삐딱하게 앉고, 삐딱하게 세상과 어른들의 일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6학년을 중학교로 보내기도 하는가 보다. 6학년, 아이이면서도 더 이상 아이가 아닌, 복잡한 존재들. 이 동화에서도 6학년은 마구 어른들 흉내를 낸다. 서로 다른 배경과 서로 다른 성격으로 말미암아 아웅거리고 으르렁대던 두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서로에게 빠져든다. 처음 사랑을 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비록 작가의 목소리를 구석구석 온전히 털어내지는 못하였지만, 두 인물의 마음 속 생각을 요모조모 비추어 봄으로써 사랑이란, 예기치 않은 결과에 도달해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혜의 이야기는 앞에서, 사내아이 일진의 이야기는 뒤에서 펼쳐지는 책의 형식도 이채롭다.

장승 벌타령
김기정 글, 이형진 그림
책읽는곰, 33쪽, 9500원, 유아

읽는 재미와 듣는 재미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책이다. “아침 먹고 뒹굴, 점심 먹고 빈둥, 저녁 먹고 드렁 했지”처럼 우리 말맛을 제대로 살렸다. 우리 옛 문장이 지녔던 네 박자 리듬으로 문장이 진행돼, 더욱더 입에 붙는다. 인과응보의 플롯을 지닌 다른 그림책과 살짝 방향을 다르게 잡았다. 잘못을 저지른 이를 벌하는 대목에서, 이 장승들은 꼭 놀자고 하는 짓 같다. 혼줄을 내주긴 하는데, 정말 분해서라기보다, 장승들이 벌이는 한바탕 짓궂은 놀이.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하고도 심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이처럼 대응하는 장승들의, 인간보다 한 수 위인 경지를 엿보는 기분이다.

꼴찌 강아지
프랭크 애시 글·그림, 김서정 옮김
마루벌, 40쪽, 8000원, 유아

꼴찌로 태어나 무엇이든 꼴찌로 배워가는, 한 강아지의 이야기다. 꼴찌로 태어난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들이 쑥쑥 크는 동안에도 도대체 크질 않는다. 그래서 무척이나 연약하고 불쌍한 모습을 하게 된다. 연민은 세상에서 가장 맑은 동시에 가장 묵직한 감정이다. 꼴찌로 태어난 강아지의 입장을 연민하는 동안에 우리는 잠시나마 가장 맑고 동시에 가장 묵직한 감정이 지나가는 흔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쉽사리 해대는 화해로서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과 세계의 섭리에 접근해서 내리는 해피엔딩. 거기에 접근하는 가장 빠른 직진의 길을 좋은 동화들은 꿰뚫고 있다.

호튼
닥터 수스 글·그림, 김서정 옮김
대교출판, 80쪽, 9000원, 유아

눈에 안 보이는 먼지처럼 작디작은 세계까지를 아끼고 보듬는 코끼리 호튼을 통해서, 우리는 명쾌하고 간단하게, 옳고 그름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새김질을 한다. 그런데 닥터 수스는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아는 작가다. 일단은 그림이 살아있고, 그리고 말맛을 살려내어 언어습득에 대한 유아들의 흥미를 자연스레 유발한다. 그리고 별 일 아닌 일로 한바탕 소동과 한바탕 축제와 한바탕 여정을 신나게 펼쳐놓는다. 모두들 호튼을 ‘바보’라 비웃지만, 호튼은 들릴락말락 하는 이 작은 세계의 구호요청에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러느라 갖은 위기를 모면하고 갖은 모험을 펼쳐나간다.

처음 자전거를 훔친 날
사토 마키코 글, 장연주 그림
고향옥 옮김, 웅진주니어
243쪽, 8500원, 초등고학년

무릇 좋은 동화란 아이들이 겪는 첫 번째 경험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처음 보조바퀴 없는 자전거를 타고, 처음 집밖을 나서고, 처음 가족이 아닌 좋은 친구를 만나고, 처음 사랑에 눈 뜨고. 이 첫 경험 속에서 겪는 느낌과 생각은 무수히 많이 이어질 다음의 경험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책은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든 6학년 아이들의 첫경험을 담고 있다. 가슴이 봉긋 솟아 올라 엄마와 처음 브래지어를 사러 간 날, 친구와 처음 먼 곳까지 자전거를 훔쳐 타고 내달렸던 일 등. 이미 흐릿해진 나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들을 하나하나 생생하게 포착해,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오롯이 손에 잡힐 듯 그렸다.

선생님을 이긴 날
김은영 시, 박형진 그림, 문학동네
88쪽, 7500원, 초등저학년

발칙하게도 감히 선생님을 이기다니. 제목에 매력을 느껴 읽다가 제법 속이 들어찬 아이를 만났다. 산골 분교에서 짝을 기다리는 미선이도 만나고, 방귀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도 만나고, 중풍에 걸려 아기가 된 외할머니도 만났다. 자연과 아이의 심성이 어우러진 모양이 즐겁고 순박해서 모처럼의 이 만남이 참 반가웠다. 가슴이 짠해지는 삶의 풍경과 아이들의 일상이 신선하게 발견되는 동시를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요즘 아이들의 삶을 다양하게 소묘해낸 시선도 반가운데 리드미컬한 느낌을 주는 시의 형태가 눈까지 흥미롭게 한다. 아이들의 삶에 비중을 두었으나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여러 환경까지 그려낸 진솔하고 따뜻한 동시집이다.

미친 개
박기범 글, 김종숙 그림
낮은산, 64쪽, 9800원, 초등저학년

손끝으로든 눈으로든 질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림책의 모양인데 내용을 보면 양으로나 시사하는 면에서나 만만치가 않다. 파란만장한 운명을 타고나 고된 삶을 이어나가지만 끝내 정체성을 확인하고야 마는 어떤 개의 삶이 우리사회의 노숙자들 모습과 번번이 겹친다. 길거리 개의 비루한 삶에서 벗어나면 아름다운 모습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내내 고대했건만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은 개를 세상 끝으로 내몰고 두 존재 사이의 두려움은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무모하고 이기적인 모습에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서 더욱 인상적인 책이다. 거친 듯하나 역동적이고 담백한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다.

빨간구두와 바람샌들
우술라 뵐펠 글, 이모니카 그림
유혜자 옮김, 한림출판사
120쪽, 8500원, 초등저학년

풍요로움이 가득한 작품이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이지만 이야기꾼인 아버지와 가난을 불평하지 않는 엄마라니. 요즘 같은 시절의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그러나 이런 엄마 아버지가 진짜 있다면 어떤 문제아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키 작고 뚱뚱하고 소심한 왕따 아들을 위해 구둣방을 잠시 닫고 같이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가 아주 낭만적이다. 여행이 즐겁기만 할까. 투덜대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도 기발하다. 무궁무진한 이야기. 이야기의 중심에는 늘 아들이 있다. 풍부한 이야기와 처음과 끝이 잘 맞물린 구성, 어깨에 힘들이지 않고도 진정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다.

완득이
김려령 지음, 창비
211쪽, 8500원, 초등고학년 이상

기묘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동의 연령을 초등학교 6학년으로 못 박고 있다. 덕분에 중학교만 들어가면 부모들은 더 이상 어린이날 선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잃는 것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학생이 되기만 하면, 읽을 책이 마땅하지 않다. 동화는 유치하고, 소설은 까마득히 어렵다. 그래서 결국 어떤 문학작품도 읽지 않는다. 그러나 중학생이라고 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문학작품에는 정신의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완득이』는 이른바 청소년소설이다. 그렇다고 동화와 별개의 작품이 아니며, 아이들이 읽지 못할 이유도 없다. 완득이란 한 인물의 시야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이야기의 속도도 아주 빨라 재미있기까지 하다.

추천 글=황선미(동화작가), 김상욱(춘천교대 교수), 김소연 (어린이도서관 ‘웃는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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