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못하지만 누군가 도울 수 있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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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피아니스트 황혜전<左>씨와 박형명 판사 부부는 대학 여행 동아리에서만나 1988년 결혼했다. 함께 서는 이번 무대는 결혼 20주년 기념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사진=SBS 제공]

“또 거기서 리듬을 틀리네. 좀 더 길게 끌어야 된다니까요.”

1일 오전 서울 서초동의 한 연습실. 피아니스트 황혜전(46)씨가 반주를 멈추고 남편 박형명(47)씨를 바라봤다. 서울 남부지법 부장판사인 박씨가 머쓱해 한다.

“항상 이 부분에서 그런다니까….”

이들이 연습하고 있는 곡은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이달 10일 오후 7시 중앙대학교 예술관 대극장에서 함께 노래할 곡이다.

“노래 안 하겠다고 한 달 동안 거절하느라 혼났어요.”

박씨는 “노래방 경력이 전부”라며 “무대에 함께 서자”는 부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한 달 전, 법조인들이 무대에 서서 불우이웃 돕기 모금 연주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박씨는 처음에 “피아니스트인 아내가 다른 법조인들의 노래 반주를 하고 나는 표만 사서 돕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생각을 바꾼 건 지난달 말쯤이었다. “부부가 함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일종의 봉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5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함께 머물던 시절을 떠올리며 에디트 피아프를 골랐다. 박씨는 파리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던 아내를 생각해 연수 지역을 일부러 파리로 선택했다고 한다.

노래 초보인 박씨가 무대 출연을 결심한 것은 중학교 3학년인 딸 지원(15)양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말로만 하는 건 소용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번 법조인 음악회의 수익금 전액은 SBS에서 9, 10일 각각 두 차례씩 방송되는 모금 프로그램인 ‘2008 희망TV24’에 전달돼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와 장애인 등을 위해 쓰이게 된다.

황씨는 “항상 남을 돕고는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만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가끔 보육원 등을 찾아다녔던 것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대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행운인지요.” 자꾸 박자를 놓치는 남편을 보면서도 황씨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음악회를 준비할 수 있는 이유다.

“저처럼 노래를 못하는 사람도 무대에 서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박씨는 첫 무대를 위해 성악가를 찾아가 레슨을 받았다. 그가 “조금만 빨리 배우러 왔다면 정말 잘할 수 있었을 거라는 소리는 들었는데…”라고 말하자 황씨가 “지금이라도 열심히 하면 훨씬 좋아질 거야. 목소리 울림이 좋아서”라며 용기를 줬다.

10일 음악회에는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의 황인규(47) 부장검사, 서울고등법원의 정강찬(42) 판사를 비롯한 법조계의 소문난 노래꾼들이 출연한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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