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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방송 '다수 의견' 반영 잘못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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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천일(숙명여대.언론정보학)교수는 지난 20일자 중앙일보 시론 '방송, 소수 의견 묵살 말아야'에서 탄핵 관련 방송보도가 소수 의견을 침묵시킨다면서 침묵의 나선이론(the spiral of silence theory)을 논리의 근거로 삼았다. 朴교수는 이 이론이 현대 정치커뮤니케이션 효과 이론의 대표격이라고 소개했다.

나선이론은 커뮤니케이션이 일방향적.수직적으로 진행되던 올드 미디어 시대의 낡은 이론이다. 그 조건에서는 朴교수의 설명대로 언론의 보도를 통해 지배적으로 보이는 여론에 반대 견해를 가진 사회 구성원들은 그 의제에 침묵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고, 그 결과 지배적으로 보이는 견해는 더욱 강화돼 실제적인 여론으로 나타나게 된다. 朴교수의 주장은 공영방송이 탄핵 반대의 목소리를 크게 키운 편파 보도를 한 결과 지배적인 여론으로 되고, 반대로 탄핵 찬성의 소수 견해가 침묵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나선이론이 등장했던 30~40년 전의 매체 환경이 아니다. 朴교수가 편파 방송을 했다고 믿는 공영방송 이외에 탄핵 찬성의 논지를 폈던 유력 신문들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인터넷 매체의 존재가 나선이론의 설명력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설령 신문과 방송이 아무리 특정 견해를 지배적으로 보이게 한다 해도 그 효과가 예전처럼 강력하게 미치지는 못한다. 국민이 인터넷을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스스로 진정한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전혀 다른 매체 환경에서는 아무리 신문이나 방송이 일방적으로 특정 견해를 지배적인 여론인 것처럼 강조 또는 강요한다고 해도 국민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서로 소통하며 확인된 견해와 일치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부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송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나선이론의 설명력은 그 방송의 영향력만큼만 존재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낡은 이론에 근거해 다른 요인들을 배제한 채 마치 공영방송이 소수 의견을 침묵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송이 편파적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또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는 있다. 다만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동원한 이론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朴교수는 왜 이렇게 무리한 적용을 했을까.

朴교수는 계속해 무리한 해석을 한다. 언론의 이러한 여론 보도 행태는 전체주의적 사회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가시적으로 보이는 행동과 의견에 집중하고, 단편적 여론조사가 민의를 모두 반영하고 있다는 식의 신중치 못한 보도는 다른 의견을 가진 구성원들을 소수로 몰면서 침묵을 강요하는 형국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변화된 매체 환경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과거처럼 모든 신문과 방송이 독재권력의 편에 서서 조작된 여론을 강요하던 환경이 아니다. 이제는 인터넷까지 장악해야 독재권력이 가능한 법인데, 그건 불가능하다. 그런 전체주의 사회는 오지 않는다.

단편적 여론조사란 또 무슨 뜻일까. 여론조사란 뭇 사람들이 심중에 품고 있는 의견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조사 결과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임무다. '단편적'이란 의미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 '다른 의견을 가진 구성원들을 소수로 몰면서 침묵을 강요하는 형국'을 만들지 않으려면 여론조사를 해서도 안 되고, 그 결과를 보도해서도 안 되는가.

부분적으로 흠을 지적할 수는 있겠으나, 공영방송이 다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신문이 다수 의견을 묵살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가 제2 창간 10년을 맞이해 달라진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