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중국의 폭력 이중 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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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이 외신 브리핑을 하던 지난달 29일 많은 한국인은 그의 말을 주목했다. 이틀 전 베이징(北京)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가 열린 서울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경찰과 언론인에게 집단 폭력을 행사한 뒤 중국 외교부가 한 첫 외신 브리핑이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정중한 사과와 유감 표명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은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장 대변인의 발언이 오히려 불난 데 부채질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BBC·CNN 등 외신 특파원들이 “중국인 유학생들의 폭력 행위를 중국 정부가 왜 비판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자 장 대변인은 작심한 듯 중국 유학생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는 “본래 선량하고 의로운 중국의 청년들이 성화 봉송을 방해하려는 세력들을 보고 분노한 나머지 성화를 지키려고 하던 와중에 충돌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외신들은 티베트인들의 시위는 불법 난동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해 놓고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 행위를 두둔하는 것은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장 대변인은 “두 사건의 본질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티베트인들의 의도는 성화 봉송을 방해해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지만 중국 청년들의 행동은 성화를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므로 문제없다는 논리였다. 그는 “우리(중국 정부)가 비난하는 것은 극단적 폭력과 파괴적인 행동”이라면서도 외국에서 실정법을 어긴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 행동이 잘못됐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중국의 이익에 맞으면 정의로운 폭력이고, 중국에 불리하면 나쁜 폭력이라는 해괴한 논리만 반복했을 뿐이다. 폭력에 대한 이중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심지어 “서울 행사는 원만하게 끝났다”고 자평했다.

사실 이번 폭력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집안 단속을 위해 과도하게 애국심을 부추겨 온 중국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비판받아야 할 폭력 행위를 무조건 두둔하다 보면 자승자박에 빠지기 쉽다.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들에 대해 하는 말도 인정받기 힘들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중국 정부는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잘못됐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