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판 '가이젠' 온라인 학습동아리로 24시간 '혁신'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혁신’은 기업의 오랜 화두다. 혁신에 목마른 기업은 혁신에 성공한 기업으로 몰려들었다. 한 수 배우기 위해서다. 미국에서는 GE가, 일본에서는 도요타가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이다. 한국의 ‘혁신 교과서’는 어디일까. 요즘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떠오르고 있다.

올 들어 550여 명의 기업체 임직원·공무원들이 광양제철소를 방문했다. ‘생쥐깡’으로 곤욕을 치른 농심 임직원을 비롯해 LG전자·현대오일뱅크·삼성토탈 등의 기업이 현장을 확인했다.

이들은 ‘혁신의 달인’으로 불리는 허남석(58·사진) 광양제철소장(부사장)이 2006년 부임 이후 일궈놓은 성과들을 보고 배워갔다.

허 소장은 “2006년 초 중국은 값싼 인건비를 무기로 물량공세를 폈고, 일본은 기술력을 앞세워 저만치 달아나는 위기상황이었다”며 “그러나 광양제철소 직원들은 아무도 이런 샌드위치 위기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혁신을 밀어붙여야만 했던 이유다.

그는 목표를 ‘세계 최고의 자동차 강판 제철소’로 세웠다. 자동차강판은 단단하면서 다루기 쉬워야 한다. 상충하는 두 가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하이테크의 산물이라 웬만한 제철소는 만들지 못한다.

광양제철소의 자동차 강판 생산량은 2005년 435만t에서 올해 650만t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도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부터 강판 인증을 받았다. 치밀한 혁신의 결과였다.

그는 부임 직후부터 매일 아침 각 부서 직원들과 돌아가며 조찬을 하고 있다. 조찬 대화가 계속되면서 직원들도 서서히 허 소장의 ‘위기론’을 공감하고 그의 비전을 공유하게 됐다.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이지만,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허 소장은 이와 함께 각 팀이 ‘비주얼 플래닝(VP)’을 활용하게 했다. VP는 팀원 각자가 앞으로 3개월 동안 무엇을 할지 월별·주별·일별로 계획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게시판이다. VP가 등장하면서 광양제철소 내 오전회의가 없어졌다.

광양제철소를 방문한 외부 인사들이 가장 큰 관심을 두는 활동이 학습동아리다. 허 소장은 4조 3교대의 생산라인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렵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상에 학습 동아리를 만들었다. 또 고로 작동의 오른팔과 왼팔이라고 할 수 있는 운전부문과 정비부문을 통합했다.

그러자 몰랐던 문제점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18일에는 광양 3고로에서 하루 1만4350t의 쇳물을 뽑아내는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 허 소장은 “도요타 직원들은 눈만 뜨면 가이젠(개선)을 생각한다는데, 우리는 온라인 학습 동아리를 통해 24시간 혁신한다”고 강조했다.

‘마이머신’도 대표적인 혁신 활동이다. 직원들이 각자 하나씩 설비를 맡아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며 수명을 연장한다. 예전에는 고장날 경우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화성부에서는 폐기처분하려던 공기압축기의 수명을 15년 이상 연장했다. 7명의 현장 직원들이 5개월 동안 업무 외 시간에 닦고 기름칠한 결과다. 이에 따른 원가절감액은 6억여원에 달한다.

혁신의 성과는 원가절감으로 나타났다. 2007년 29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2652억원을 목표로 삼고 있다. 허 소장은 “원료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가 최근 강판 가격을 1t에 12만원만 인상한 것은 이처럼 혁신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양=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