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정치 세습의 장단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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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에는 아버지 또는 장인의 선거구를 물려받은 2세 국회의원이 많다.정원 5백12명인 중의원엔 3분의 1이 넘는 1백80여명에 이른다.총리를 지낸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하타 쓰토무(羽田孜)에서부터 자민당의 고노 요헤이(河野洋 平)총재.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통산상.가토 고이치(加藤紘一)정조회장을 비롯,통합야당 신진당(新進黨)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간사장등이 모두 2세 의원이다.
이처럼 일본에「세습(世襲)」의원이 많은 것은 조그만 우동가게에서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가업(家業)을 잇는 것을 자연스럽게받아들이는 특유의 전통 덕이 크다.게다가 2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유권자의 투표성향,선거제도가 가세한다.
일본에서 국회의원이 되려면「3방」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지방(地盤.지역연고)간방(看板.지명도)가방(자금력)이다.이 세 조건을 갖추는데 있어 2세후보는 압도적으로 유리하다.우선 승패를 좌우하는「지방」「가방」은 후보자의 개인 후 원회조직이 없으면 가동이 어렵기 때문이다.일선에서 정치자금을 거두고 표를모으는 것은 후원회가 다하는데 뿌리가 깊을수록 후원회는 튼튼하다.후원회는 지역이권.인맥과 오랜기간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일조일석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집단에의 동조,권위에의 복종을 특질로 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지역출신 의원이 죽고,평소 친숙했던 2세가 나타나『아버님의 뒤를 이어 지역일꾼이 되겠습니다』하고 머리를 숙이면 대체로 저항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렇게 뽑힌 세습의원이 중의원의 절반에 육박하고,이들이 주도하는 정치가 부패.비효율의 난맥을 거듭하자 최근엔 비판론이 거세게 제기되기 시작했다.정치가라는 공직의 절반이 가업화해 세습되는 것은 치열한 국정논의와 건전한 사회발 전에 도움이안된다는 것이다.오히려 불공정 게임에 의한 2세들의 대거 등장이 정계의 질(質)저하와 직접 관련이 있을뿐 아니라 유능한 신인의 참여를 방해한다는 주장이다.2세 들은 일찍부터 자금조성과관련한 부패루트,권력경쟁 이면의 권모술수등 정치의 악마성과 나쁜 지혜에 길들여져 정치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2세의원들은 정치를 가업으로 알고 프로정신에서 익히고 훈련받은 것은 다른 직종에서와 마찬가지로 폐해보다 장점이많다고 반론한다.훌륭한 1세를 본받아 정진함으로써 더 유능한 정치가가 된 2세가 많고,무엇보다 유권자들의 선 택은 귀중한 것 아니냐는 항변이다.
한국에도 바야흐로 전.현직 대통령과 정당지도자들의 2세 출마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이미 정당의 지구당위원장을 맡아 뛰어든 2세도 있고,본인은 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 사람,정세를 보며 점점 출진의사를 굳혀가는 2세가 있다.
이들이 처한 환경은 일본의 2세들과 어떻게 다른가.일본의 2세는 거의 전부가 부친의 사거(死去)후 선거구를 승계받으며,선친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음덕(陰德)의 차원이다.반면 한국의 2세들은 부친의 정치적 힘이 최고조에 달해 있거나 막대한 경제적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불공정」의 정도에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일본의 2세들은 대부분 정치가업을 물려받기 직전까지는 샐러리맨 등으로 생업을 갖고 보통사람의 인생수업을 쌓아왔다.아버지의 굴곡많은 정치역정에 따라 특수경험을 많이 한 한국의 2세와는 권력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
일본에선 아버지의 존재가 대부분 순풍이라면 한국에선 지역과 쟁점에 따라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점은 2세존중의 일본적 관행과 달리 한국의 다수 유권자들은 부릅뜬 눈으로 2세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日本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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