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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한방(漢方)에서 「사상자(蛇床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뱀도랏씨앗은 『의심방』 방내편 용약석(用藥石)대목에 잇따라 등장한다. 뱀도랏은 들이나 길가에 저절로 나는 무릎 높이의 풀이다.
여름철이면 희고 자잘한 뭉치꽃을 피운다.흡사 미나리꽃이다.타원형의 작은 열매는 익으면 가시로 덮여 사람의 옷자락에 묻곤 한다. 목장서 돌아온 남편의 바지에 붙어 있는 것을 몇차례 뜯어낸 기억이 난다.남편을 따라다니는 삽살개의 몸에도 더러 붙어 있었다.이렇게 애써 옮겨 붙으며 널리 씨를 퍼뜨리는 것인가.집요한 번식력에 마음이 끌렸다.
바로 그 씨앗이 남성의 음위(陰위)를 고치는 특수 강장제라는것이다. 음위란 임포텐츠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사상자는 여성의 쇠잔을 바로잡는 약이기도 하다고 적혀 있다.
언젠가 외국의 한 의약연구소의 보고기사를 신문서 보았다.사상자를 생쥐에 투여한 결과 섹스의 힘이 북돋워졌다는 것이다.
숱한 야생초 속에서 용케도 영약을 찾아내 살았던 옛사람의 지혜가 새삼 놀라웠다.
음위엔 마가루도 효험이 있다고 『의심방』은 주장한다.
「산약(山藥)」이라고도 칭하는 산마를 볕에 말려 빻은 다음 곱게 체로 쳐서 가루를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났다.외국 공관살이할 때 어머니는아버지를 위한 아침 식탁에 늘 마죽을 올렸다.마가루로 된죽을 쑤어 오트밀처럼 따뜻한 우유에 풀어 들게 하는 메뉴였다.
소위「보약」을 아버지가 드는 것을 아리영은 본 적이 없다.그러나 어머니는 이같은 자연식으로 아버지의 「힘」을 꾸준히 생산해주고 있었는지 모른다.매사에 사랑스런 노력을 하는 여인이었다. 아리영은 지금껏 그런 노력을 남편에게 기울여 보지 못했다.
할 줄도 몰랐고,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반성을 닮은 돌이킴이 잠시 가슴바닥을 적셨다.
정여사는 남편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사과구이를 얌전한 솜씨로 깨끗이 들고 있는 정여사를 바라보며 그녀의 부부생활을 상상해보았다.
남편의 사랑을 흠씬 받고 있는 여인 같았다.그렇지 않고서야 저렇듯 차분한 풍만감이 생기긴 어려울 것같았다.
서여사가 정읍 나들이를 제의하고 있었다.정읍은 『정읍사(井邑詞)』의 고장이다.
단 하나의 백제 가사인 『정읍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서여사는 그에 대한 글과 그림을 정여사에게 맡겨 책을 엮어볼 생각인 듯했다.
아버지는 그 취재여행에 동참할 뜻을 쾌히 내비쳤다.어쩐지 마음이 쓰였다.
당일치기이긴 하지만 여행은 흔히 동반자의 마음을 묶어 준다.
아버지와 정여사가 가까워지리라는 것을 아리영은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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