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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X·Y세대, 고난의 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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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온라인 광고회사의 영업이사였던 켈리 매컬리프(34)는 요즘 친구들과의 만남을 뚝 끊었다. 휴대전화도 가능한 한 쓰지 않고, 차도 주차장에 세워 두는 일이 더 많다. 올 2월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씀씀이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최근 그는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을 해야 했다. 부모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손을 벌린 것이다. 그는 “이 나이에 부모에게 폐를 끼치는 신세가 되다니 한심하다”고 푸념했다.

비단 매컬리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비롯된 미국의 경제 한파가 X세대와 Y세대를 직격했다. 경제 호황 때 성장기를 보낸 이들은 대부분 두둑한 용돈을 받아 가며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최신형 휴대전화와 아이팟을 끼고 다닌 ‘과소비’ 세대다. 요즘 이들이 처음으로 지출을 줄이고 가족에게 돈을 꿔 가며 불황의 쓴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친구들과 살림을 합치거나 부모 집에 얹혀 살기까지 한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27일 보도했다.

약 8000만 명에 달하는 20~30대 X, Y세대는 1980년대 미국에 심각한 경기 불황이 닥쳤을 때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회에 나온 이후에도 지금껏 승진과 수입 증가로 풍요로운 삶을 지속하다 생애 첫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지난해 25~34세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5.4%로 전년도(4.3%)에 비해 껑충 뛰었다. 2006년에는 전체 파산 신청자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다.

지난해 브루킹스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25~34세 젊은이들의 카드 빚은 2873달러(89년)에서 4357달러(2004년)로 52%나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연체자의 비율도 그 어느 연령층보다 높았다. 세대 간 부의 격차를 연구하는 에드워드 울프 뉴욕대 교수는 “많은 젊은이가 거액의 학자금 대출도 채 갚지 못한 상태에서 불황을 맞게 돼 카드 빚에 주택담보 대출까지 부채가 더욱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마침 젊은 세대가 처음 집을 구입하는 시기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겹친 것도 악재다. 2년 전 계약금 5000달러를 내고 나머지는 변동금리로 주택담보 대출을 받아 35만 달러짜리 집을 산 레스토랑 매니저 덜스 마야(27). 집값은 20만 달러로 떨어진 반면 대출 금리는 갈수록 올라 죽을 맛이다. 그는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이 2300달러에서 3300달러로 늘어나자 얼마 전 은행에 금리 조정을 요청했다. 거절당할 경우 별수 없이 집을 은행에 넘기고 월세 아파트를 알아봐야 할 판이다.

포틀랜드 금융지식연구소(IFL)의 레슬리 와인필드 소장은 “이들 X, Y세대는 그간 심각한 경제난을 겪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예리 기자

◇X, Y세대=‘X세대’는 60년대 말~80년대 초 출생자를 말한다. Y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baby boomers·46~64년 출생자)의 자녀로 80~95년에 출생한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X세대에 이어졌다는 뜻에서 ‘Y세대’라고 불린다. ‘밀레니엄 세대’ 또는 ‘인터넷 세대’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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