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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세계 누비는 스페인 패션의류 … ‘자라’의 비밀을 엿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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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자라의 2008년 신상품. 스페인 가격이 140유로(20만원대 초반) 정도.

16일 스페인 북서부의 작은 도시 아르텍소의 인디텍스 본사. 세계 최대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자라를 만드는 곳이다. 이 회사의 디자인실은 축구장처럼 뻥 뚫려 있다. 7만2000㎡ 크기의 사무실 한가운데서 남성복 상품관리자 아키 긴코(32)는 일본어로 누군가와 통화 중이다. 잠시 후 전화를 끊은 그는 바로 옆에 서 있는 대여섯 명의 디자이너에게 다가가 스페인어로 이렇게 말한다. “긴자 매장인데, 스키니진 반응이 좋대. 까만 데님 소재를 찾는 손님이 많다는데.” “뉴욕에서도 까만 데님 얘기가 나왔어. 소재 좀 찾아 봐.” 그러자 디자이너 중 한 명이 바로 옆에 쌓아놓은 옷감 견본을 뒤진다. 디자이너들 바로 옆에 컴퓨터를 두고 앉은 패턴사(옷본 제작자)에게 새 디자인과 옷감 정보가 보내지고, 그가 옷본을 완성해 바로 옆에 서 있는 재단사에게 넘긴다. 잘린 옷감이 다시 바로 옆에 있는 재봉사에게 넘어가 옷이 완성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두 시간. 디자이너들은 다시 이 옷을 바닥에 펼쳐놓고 토론한 뒤 대량생산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일본 도쿄의 긴자 거리에서 날아온 반응이 즉석에서 신상품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1975년 작은 매장에서 출발해 27년 만에 62억6400만 유로(약 9조83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한 자라. 그 배경엔 세계 2위 패션기업 인디텍스의 속도제일주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30일 자라의 한국 런칭을 앞두고 스페인 본사를 방문해 속도의 비결을 살펴봤다.

◇주 2회 비행기로 신상품 공수=소비자 반응을 보고 재빨리 생산한다. 또 소비자가 언제든 살 수 있도록 싸게 판다. 이 같은 자라의 ‘패스트 패션’ 수칙은 동대문시장을 빼닮았다. 동대문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독자적인 유통망이 68개국 1300여 개 매장에 뻗어 있다는 것. 자라는 비행기로 세계 모든 매장에 일주일에 두 차례 신상품을 공급한다. 지난해 선보인 신상품만 1만2000여 가지. 매일 33벌꼴로 새 상품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낸 셈이다. 벽 없는 디자인실은 빠른 생산을 위해서다. 상품관리자들이 매일같이 현장 반응을 점검한 뒤 이를 디자이너·영업사원들과 공유하며 신상품 디자인에 반영한다. 파블로 이슬라 사장은 “매출 추이와 소비자 건의사항이 고스란히 디자인에 반영되니 실패한 디자인도, 지나친 재고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라의 성공은 세계 패션업계에 패스트 패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스페인에서만 망고·쿠스토바르셀로나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태어나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투자도 속도제일주의=디자인된 옷은 본사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생산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아르텍소 지방에만 자라 공장이 11개 있다. 포르투갈처럼 스페인 인근에서 만드는 물량이 전체 생산량의 64% 정도다. 왜 인건비가 좀 더 싼 아시아로 생산 기지를 옮기지 않을까. 이슬라 사장은 “싸게 만드는 것보다 빨리 만들어 빨리 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물류 효율을 위해 모든 제품은 본사 바로 옆에 있는 물류센터로 모이는데, 과정을 단축하려면 생산기지가 물류센터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것. 모든 제품을 비행기로 보내는 것도 속도를 위한 자라의 투자다. 아시아 매장들도 이틀 안에 주문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

3주일이면 매장 내 대부분의 옷이 완전히 바뀔 정도로 신상품이 자주 나오지만 인기 디자인이라고 재생산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디아고날 매장을 찾은 손님 엘레나(22)는 “나중에 오면 같은 옷이 없으니 맘에 드는 옷은 그 자리에서 산다. 값이 싸니 그때그때 사도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아르텍소(스페인)=임미진 기자

◇자라(Zara)=스페인 북서부 지방의 소도시 라코르냐에서 출발해 인근 아르텍소로 본사를 옮긴 패스트 패션 브랜드.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옷가게 점원 출신이다. 그는 의류 생산업체를 운영하다 지금의 생산 시스템을 창안했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면서도 대중적인 가격이 특징이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계절에 앞서 옷을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따라 그때그때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시스템. 재고를 줄이고 유행을 빨리 좇아 가기 위해 패션업체들 사이에서 널리 도입되고 있다. 유행 타는 옷을 싼값에 사 입고 금방 버리는 소비 풍조를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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