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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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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5년 9월 11일 실시된 일본 총선은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울 만큼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한 선거였다. 자민당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승부수와 허를 뚫는 전략으로 유권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는 67.5 %란 기록적 투표율과 자민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언론들은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고이즈미의 정치 스타일을 ‘극장(劇場)정치’라 불렀다.

선거를 실시하게 된 배경부터가 그랬다. 고이즈미는 일편단심으로 추진하던 우정민영화 정책이 당내 반발에 부닥쳐 힘들어지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 실시를 선언했다. 그러고는 유권자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갈릴레이가 유죄 판결을 받고도 지구는 돈다고 했다. 나는 죽어도 우정민영화가 옳다고 생각한다.”

극장정치의 백미는 이른바 ‘자객 공천’이었다. 고이즈미는 우정민영화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반대파 의원들은 당을 뛰쳐나가 무소속이나 신당으로 출마하는 길밖에 없었다. 고이즈미는 그들의 지역구에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인사들을 내보냈다. 일본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던 벤처기업인 호리에 다카후미, 인기 아나운서 출신의 여성 각료, ‘미스 도쿄대’ 출신의 여성 관료, 유명 요리연구가 등 각 분야의 스타들이 탈당 의원들을 잡기 위한 ‘자객’으로 나섰다. 고이즈미는 탈당 의원들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자객 후보는 개혁의 전위대로 치켜세웠다. 480석 가운데 299석을 휩쓴 자민당의 압승은 그런 전략의 결과였다.

하지만 자객 공천은 훗날 자민당이 자중지란에 빠지는 화근이 됐다. 1년 뒤 고이즈미가 총리직을 내놓자 자민당에서는 9·11 총선에서 자객을 물리치고 살아남은 반(反)고이즈미 의원 12명의 복당이 이슈로 떠올랐다. 그중에는 거물급 정치인도 있었다.

하지만 ‘반개혁’으로 몰아세워 한 번 내보낸 의원들을 다시 받아들이는 데 대한 여론의 반응이 달갑지 않았다. 또 파벌간의 이해가 얽혀들어 복당 문제를 놓고 자민당 간부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수수방관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18대 총선 과정에서 공천 파동으로 홍역을 앓았던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복당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친박 의원들은 하나같이 “살아 돌아오겠다”며 탈당을 단행했으니 복당을 둘러싼 진통은 선거 전부터 예상되던 일이었다. 그 경위가 일본 자민당과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측면도 있어 수평비교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이 있다. 기록적 압승을 거뒀던 자민당의 경우에서조차 복당 문제로 당이 시끄러워지자 여론은 이내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