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집념에 딸의 감성 넣어 주부 60%를 ‘피죤하는’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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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삼동 피죤 본사에서 함께한 이윤재 회장<左>과 장녀 이주연 부회장.

‘피죤한다’는 말이 있다. 빨래할 때 섬유유연제를 넣고 헹군다는 뜻이다.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것이다. 주부 10명 중 6명은 피죤 제품을 쓴다고 한다. 그런 피죤이 다음달 1일 30주년을 맞는다. 지난주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이윤재(74) 회장과 장녀인 이주연(44) 부회장을 만났다. 그녀는 지난해 하반기 인사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부녀 승계구도가 이뤄진 것이다.

이 회장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 돈을 번다’는 교훈을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 몇 년 궁리 끝에 출시한 것이 섬유유연제였다. 정전기를 막고 옷을 부드럽게 해주는 제품이다. 1970년대 말 섬유 소재는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가 대부분이었다. 몸에 착 달라붙고 정전기가 자주 발생해 옷을 입을 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당시 소비자들에게 섬유유연제는 듣도 보도 못한 제품이었다. 그는 제품 홍보를 위해 대학교 의류학과와 가정관리학과를 찾아갔다. 미래의 주부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제품 특징을 먼저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여자 셋만 모인다 싶으면 달려가 제품을 무료로 뿌렸다. 그는 “우수한 제품은 내놓았는데, 시장이 몰라주는 바람에 많이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당시 사전 지식이 없던 소비자를 대상으로 끈질기게 마케팅한 것이 회사를 30년 동안 유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80년대 히트상품 ‘무균무때’를 개발했을 때는 북한의 천재 과학자를 끌어들였다. 궁리환 박사다. 서독 유학 중 망명한 그는 국내 대덕단지로 스카우트됐다. 이 회장은 그가 화학분야에서 최고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함께 무균무때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O-157·비브리오·장티푸스 같은 유해균을 없애고 악취 제거력이 뛰어나 한 미국 회사가 제품과 기술을 통째로 사가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몸을 씻는 데 비누 하나면 충분하던 90년엔 업계 최초로 ‘마프러스’라는 보디클렌저를 내놓았다. 2005년엔 또 하나의 신제품 액체세제 ‘액츠’를 선보였다. 액츠는 가루세제만 써왔던 국내 시장에 신선한 변화를 줬다. 올해는 아토피에 효능이 좋은 투명 섬유유연제 ‘피죤 투명한 자연이야기’와 항균기능이 향상된 ‘피죤 데오후레쉬’를 선보였다. 7월엔 중국 톈진(天津)에 연간 50만t 규모의 공장을 신축한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고 소득수준이 높아진 중국 소비자들을 본격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 이 회장은 “소비자를 실험대상으로 삼아선 절대 안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인체에 무해한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이주연 부회장은 “우리는 제품이 아닌 정성을 판다”고 거들었다.

정선구 기자

◇피죤 오너 일가=이 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 부회장은 1남1녀 중 장녀. 서강대 영문학과를 나왔으나 외국에서 디자인과 회화를 공부, 이 분야에 더 정통하다. 장남 정준(41)씨는 연세대 경제학과와 미 스탠퍼드대 대학원(경제학 박사)을 졸업하고 지금은 메릴랜드주립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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