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한책읽기Review] 북핵은 ‘터지지 않는 위험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북한 핵협상에 직접 참가했던 한·미 양국 외교관이 동시에 책을 펴냈다. 핵협상의 진행과정과 뒷얘기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했다. 두 저자의 시각은 판이하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저자는 부시 미 정부의 강경파들이 핵협상을 망치는 과정을 꼼꼼히 그리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저자는 협상 과정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자들로선 재미있는 대조다. 두 권을 모두 읽으면 부시 미 대통령이 취임한 2001년부터 최근까지 벌어지고 있는 2차 북핵 위기의 전 과정을 소상히 알 수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본격화한 2차 북핵 위기는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부시 대통령이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 조치를 결정할 시점에 이르렀다. 지난해 6차 6자회담은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핵시설을 불능화하면 미국은 두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10·3 합의). 북한은 지금 핵시설 불능화를 거의 끝냈고, 미국과 핵 신고를 둘러싼 막바지 협상을 마쳤다.

미국이 두 조치를 취하면 북·미 관계의 일대 사건이다. 북·미 적대관계 종식에 합의했던 클린턴 행정부도 여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아이러니다. 다음 단계는 북핵 폐기와 관계국 간 관계 정상화다. 여기까지 시야에 넣을 수 있게 된 데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9·19 공동성명(2005년), 북한의 핵 실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전환, 2·13 합의(2007년) 등등.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1~3차 6자회담을 빼놓을 수 없다. 9·19, 2·13, 10·3 합의사항은 1~3차 회담의 파생상품이다. 협상 초기 참가국 간 좌충우돌, 조율과 좌절, 창의적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6자회담은 합의문을 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 과정을 간과하고 북핵 문제의 해법을 논하기는 어렵다.

『전환적 사건』은 1~3차 6자회담과 그 전의 2차 북핵 위기 발발 과정을 다루고 있다. 1~3차 회담의 수석대표(당시 외교부 차관보)였던 이수혁 전 국정원 1차장이 북핵 협상의 이면을 그렸다.

아직 끝나지 않은 동시대사를 외교관이 직접 쓴 다큐멘터리다. 자서전 성격의 회고록과 성격이 다르다. 저널리스트의 논픽션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새로운 시도야말로 한국에서는 ‘전환전 사건’이다. 저자는 “북핵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원자재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내용도 한 편의 동영상을 보는 것 같다. 2차 북핵 위기 전개과정, 노무현 정부 초기 한-미·일·중 정상회담의 북핵 문제 조율, 6자회담 상황 묘사는 압권이다. 일부 내용이 이미 공개됐지만 협상 당사자가 기록한 팩트(Fact)의 힘이 신선함을 되살려주고 있다. 협상 과정은 외교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외교의 진수는 조정과 설득을 넘어 창의력에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북한이 던진 ‘핵 동결과 보상’, 미국이 내놓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접목시켜 나가는 창조적 발상이 생생하다.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부각하고 싶은 듯하다.

저자는 원고를 3년 전 탈고했지만 출간에 맞춰 수정·보완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는 우리의 생존과 평화에 관한 근본적 안보 문제로서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원고는 현직 외교관 당시 정리한 만큼 일정 한계도 갖는다. 보안 문제 때문이다. 적지 못하고, 자세하게 묘사하지 못한 부분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북핵 문제의 종착역이 보일 때 『전환적 사건』의 증보판이 나오길 기대한다.

오영환 기자

실패한 외교
찰스 잭 프리처드 지음
김연철·서보혁 옮김
사계절. 323쪽. 1만5000원

클린턴 정부 말기부터 2003년까지 미 백악관과 국무성에서 북한과의 핵협상에 직간접으로 간여했던 저자는 북한의 핵실험과 플루토늄 보유량 확대는 부시 정부의 혼란스러운 대북정책이 자초한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로 규정하고 압박을 가해 붕괴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은 미 정부의 강경파들이 북·미 간 협상의 진전을 끊임없이 방해한 결과 오히려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을 키웠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북한의 협상력만 키운 결과가 됐다고 꼬집고 있다.

부시 정부의 핵협상에 대한 비판은 이미 새롭지 않다. 지난해 7월 이 책 원본이 출간됐을 때 이미 미 정부 내 강경파가 대부분 퇴진한 상황이었다. 그 뒤 자세를 바꾼 미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 더디지만 진전을 이루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최근의 핵협상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최근 씌어진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으로 한·미관계가 진전되면 부시 미 대통령은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더해 새롭게 부각된 북한·시리아 핵협력설의 영향으로 협상이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책에선 1기 부시 정부에서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장악한 강경파들이 배후에서 협상의 진전을 좌절시킨 과정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실무급 회의에서 도덕적 순수성을 내세워 북한에 어떠한 보상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젊은 강경파들의 주장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고 저자는 술회하고 있다.

또 강경파들은 한반도의 사정에 이해가 얕았고 동시에 미국의 안보에 겨눠지고 있는 핵확산 위협을 제거하려는 절박성마저 부족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6자회담이 시작되는 시기에 직책상 미국 대표가 되어야 할 자신이 협상파라는 이유로 대표단에서 제외되자 사표를 던진 저자다.

옮긴이는 저자의 이 같은 평가를 통해 교훈을 얻자고 제안한다. “미국의 ‘실패한 외교’가 한국에서는 ‘실패할 외교’가 되어선 안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부시 정부의 도덕외교가 실패한 이유를 우리가 답습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10년의 대북 포용정책에 비판적인 이명박 정부에 대한 노파심 섞인 충고인 셈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진행돼온 사안에 대해 단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때이른 것일 수 있다. ‘퍼주기 논란’처럼 소모적인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은 속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북한이란 상대와 벌이는 게임이기에 더욱 그렇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는 한편에 치우친 접근법으론 북핵문제처럼 복잡한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이 아닐까. 모든 가능성을 포괄할 수 있는 유연하고 용의주도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 원제 『Failed Diplomacy : The Tragic Story of How North Korea Got the Bomb』.

강영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