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란 시, 김동수 그림,
창비,
104쪽, 8500원,
초등생 이상
일상에서 건져낸 동시 64편을 엮었다. 1963년생 시인이 나이를 잊고 찾아낸 동심의 세계가 참 재미있다. “친구랑 싸웠다/졌다/엄마한테 와락/할머니한테 와락” (‘와락’)처럼 아이의 심정을 간결하게 압축해 옮겨 놓았다.
시 속에는 엉뚱하고 천진한 아이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엄마가 아픈 날 약을 사러 갔다 온 에피소드가 담긴 ‘나는 119’의 한 구절. “엄마 앞에 약봉지를 든 채로/나는 쓰러졌다/가물가물 쓰러진 채 생각해 보니/내가 너무 효자였다” 스스로를 효자라니, 웃음이 절로 난다.
또 “비빔밥 그릇은/부끄럼이 참 많아요/밥을 다 먹고 나도/얼굴이 빨개요”(‘부끄럼’)나 “자꾸 기침이 나서/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나는 해골을 보았다/기침은 못 보고/유령만 보았다”(‘엑스레이’) 등의 상상력도 기발하다.
글감은 아이의 주변을 둘러싼 일상이다.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 등 가족 골고루 등장했다. 특히 동생은 단골 소재다. “엄마가 동생을/낳아 주지 않으면/로봇에게 부탁해야지”(‘동생을 더 갖고 싶어’), “동생이 모기한테/눈꺼풀을 물렸다/처음으로 나에게/윙크를 한다”(‘윙크’), “아∼함/동생이 하품을 한다/입 안이/빨갛게 익은 수박 속 같다/충치는 까맣게 잘 익은 수박씨”(‘수박씨’) 등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얘깃거리로 삼았다.
시선은 시종일관 따뜻하다. 알은 품은 어미닭을 보고는 “쫄쫄 굶으며”에 초점을 맞췄고, 제사상에 놓인 떡을 몰래 집어 먹는 동생을 그리면서는 “그래도 조상님께서는/아무런 꾸중도 안 하십니다”라며 안도의 숨을 쉰다.
모든 시에 연 구분이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후루룩 단숨에 읽힌다.
이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