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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불쌍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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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편이라는 것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구계원 옮김,
열음사,
296쪽, 1만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셰익스피어의 명언은 수정돼야 할 것 같다. 성애소설 『실락원』으로 유명한 일본작가 와타나베 준이치의 ‘남편론’에 해당하는 이 에세이집을 덮은 뒤에 든 생각이다. 70대 중반의 노 작가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편”을 부르짖는다.

중요한 건 ‘남자’가 아니라 ‘남편’이다.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남자’가 웨딩마치 이후 ‘남편’이 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조목조목 따져본다. 연애시절부터 신혼·중년·노년까지 우리의 일생을 쭉 따라가며 남편이란 종족의 본체를 해부한다.

작가는 남편을 ‘뜬구름’에 비유한다. 남편들은 대체로 우유부단하고, 책임감이 없고, 게으름뱅이고, 그러면서도 왕 같은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모순적 존재라는 것. 겉으로는 강한 척, 멋진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리저리 흔들린다. 바람을 피우면서도 결국 가정으로 돌아오고, 회사 일에 피곤하다며 가사를 멀리하고, 아내의 보살핌을 갈구하며 어리광을 피우는 게 남편들이다.

저자는 섹스에 집착하는 남편의 동물성을 주목한다. 아내 앞에선 힘없던 남편들이 다른 여자 앞에선 당당한 사례를 들며 ‘남성의 사랑은 육체보다 정신에 가깝다’는 독특한 주장도 편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일부일처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급진적 시각도 수용한다. 사랑이 식은 남편을 위해 아내들은 자기 단장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가정평화를 위해 아내들은 남편의 ‘뿌리’인 시댁 부모의 성향을 잘 알아야 한다는 그의 제안에 분통을 터뜨릴 여성들도 꽤 있을 것 같다. 세상사 다 겪은 노인의 남편 옹호론처럼 비칠 수 있으나 그만큼 현실감 풍부한 ‘부부백서’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책으로 읽는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이다.

사실 세상에 고정된 건 없다. 부부관계는 시대와 문화의 산물이다. 작가도 이를 십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지금, 여기’ 남편의 실상을 제시하려고 한다. 우리와 문화권이 비슷한 일본 사례인지라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다. 혹시 기자가 남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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