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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근본주의>10.끝 과연 위협세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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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란에서 터키.중앙아시아를 거쳐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이슬람 현지취재를 마치면서 취재진의 머리에 각인된 이슬람은 모순과 갈등 그것이었다.
이슬람 혁명의 종주국(宗主國) 이란에서 우리는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슬람의 두 얼굴을 보았고,이슬람 세속(世俗)주의의 화신(化身) 터키에서는 서구화를둘러싼 작용과 반작용의 해묵은 갈등과 대립을 확 인할 수 있었다.알라(神)가 되살아난 중앙아시아 5개국에서는 급속한 이슬람회귀열풍 속에 표류하는 사회의 불안한 공기를 감지할 수 있었으며,이집트.알제리.튀니지.리비아.모로코 등 북아프리카에서는 민주화 열망의 좌절과 빈곤이 엮어내는 비극의 이중주(二重奏)를 들을 수 있었다.
모순과 갈등의 원인이 이슬람 사회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점도 이해하게 됐다.이스라엘과 아랍에 대한 서방의 2중잣대,이슬람에 대한 서방의 몰이해,공존(共存)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서방의 기본자세 등은 이슬람 사회의 내적 모순과 어우러져 反세속주의와 反서구화를 부르짖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 배경이 되고있다.근본주의자들의 좌절감이 때로 폭력과 테러에서 절망적 분출구를 찾고 있는 악순환도 실감할 수 있었다.
취재진은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서방의 일반적인식대로 21세기로 넘어가는 세기말적(世紀末的)전환기에서 세계新질서에 대한 최대 도전 요인 가운데 하나일 수 있겠느냐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현지취재를 통해 내린 우리 의 결론은 부정적이다.그것은 다음의 두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이슬람 사회의 다양성이다.지브롤터 해협에서 동남아에 이르는 12억 인구의 광대한 이슬람 세계가 이슬람 근본주의를 매개로 단일세력화 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하다는 것이다.50여개국이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며,대중들의 인식과 추구하 는 이상 또한다르다.나세르式 아랍민족주의는 이미 실패로 끝났다.지난 91년걸프戰에서 입증됐고,보스니아 내전에 대한 대응에서도 확인되듯 이슬람 세계는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이슬람권에는 親서방과 反서방이 있을 뿐이지 단일연대 (連帶)세력으로서 이슬람권은존재하지 않는다.이슬람 문명의 위험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과장인 것이다.
또 하나는 이슬람 근본주의 자체의 분파성이다.이슬람 근본주의는 정치적 입장과 종교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분파로 갈라져 있다.카이로大 하산 하나피교수(철학)는 세가지로 분류한다.이슬람원점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보수적 운동,합리 성을 강조하고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운동,사회적 공정성을 중시하고 富의 균배와 평등을 역설하는 사회주의적 운동 등 세갈래라는것이다.성향상으로도 과격파보다는 온건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서방은 이슬람권 일부의 과격성만을 꼬집어 이슬람 근본주의를 脫냉전후 서방의 안정과 평화에 대한 최대 위협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구세계,특히 미국은 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적의 존재는 미국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냉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산주의에 이어 이슬람 근본주의를 새로운 적으로 삼아 「反이슬람 냉전」을 선언하는 서방의 태도는 적의 필요성에 근거하 고 있다고 아흐메드 바가트 알 아흐람紙(이집트)칼럼니스트는 목청을 높인다. 이슬람에 대한 서방의 부정적 인식 배경에는 이슬람 국가치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도 있다.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 배경이 되고 있는 이슬람 사회 자체의모순과 갈등도 대부분 이 점에 기인한다는데 취재진도 인식을 같이한다.그러나 親서방이냐 反서방이냐에 따라 서방의 민주주의 적용 기준이 달라진다는 알라위 알 미다그리 모로코 종교장관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그는 알제리의 예를 들어 서방의 2중기준을 비판한다.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인 이슬람구국전선(FIS)의 총선 승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서방의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었다.말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면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꼴이됐다.』 FIS집권 후의 민주주의 폐기 가능성을 우 려했다는게서방의 변명이지만 서방의 판단 실수로 이슬람권의 민주화는 적어도 20년 후퇴했다고 그는 비판한다.
우리는 민주화와 함께 이슬람 세계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근대화와 서구화 사이의 갈등에서 빚어지고 있는 위선이라고 생각한다.식민통치 과정에서 강요된 근대화가 종교적 가치관과심한 갈등을 빚어왔고,그 결과는 위선적 삶의 양 태로 나타나고있다.집안에서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서 밖에 나갈 때는 몸전체를 가려야 하고,혼자선 술을 마시면서도 남이 보는 앞에서는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共存 바탕의 자세 필요 압바스 자라리 모로코 이슬람학자평의회 의장은 한국이나 일본의 근대화를 예로 들면서 전통적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피력하고 있다.『이슬람 사회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전통에 바탕을 둔 내부로부터의 근대화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하산 하나피 교수의 주장도 결국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역사의 종말』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대로 우리가 역사적 진보의 종점에 서 있다면 우리의 철학은 공존과 이해의 철학이 돼야 한다는 믿음으로 시리즈를 맺는다.
[카이로=裵明福특파원] ▧ 이 시리즈 취재에 협조해 주신 각국 정부및 종교계.학계 관계자들과 해당국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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