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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가선 한·일 … 실용외교 열매 맺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지켜보면서 5년 전인 2003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일 때가 떠올랐다. 너무나 비슷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정상회담, TBS 방송에 출연해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서 했던 주요 발언들….

5년 전에도 한·일 정상은 화합의 시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가 주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한·일 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이 2005년 6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그렇게 이야기했으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멈출 줄 알았는데 너무 한다”며 화를 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가 그해 10월 야스쿠니를 또 참배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고 한·일 관계는 얼어붙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제국주의를 숭상하는 종교기관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노 전 대통령의 체면을 조금이라도 세워줬으면 극한 상황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한국 측의 해석이다. 그러나 그건 고이즈미 전 총리의 우파 성향과 일본의 정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오판이었다.

이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도 21일 새로운 화합시대를 열기로 합의했다.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현재 상황은 5년 전보다는 훨씬 낫다. 미국 외교를 중시했던 고이즈미 전 총리와 달리 후쿠다 총리는 아시아 외교를 중시한다.

앞으로 양국 관계가 더 좋아지고, 윈-윈(win-win) 관계가 된다면 시너지 효과도 클 것이다.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5년 뒤에는 노 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결실을 거둘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반드시 짚어봐야 할 대목들이 있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걸림돌을 세밀히 살펴 실패를 피해 가는 것도 중요한 외교 전략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게 과거사 문제인 것 같다. 평온하다가도 이로 인해 갑자기 출렁거리는 것이 한·일 관계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등으로 한·일 관계가 삐거덕거린 적이 한두 번인가. 노 전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은 한일병합 100주년이 되는 해다. 과거사 문제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 또다시 일본에서 남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말이 나오고, 한국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진다면 이 대통령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리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일본 정치권은 다시 보수 우경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후쿠다 총리는 지지율 급락으로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자 보수강경 세력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전 자민당 정조회장,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외상 등 세 명의 머리글자를 딴 ‘ANA’ 트리오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면 동북아시아에 긴장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 전략에도 일본의 경기하락과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의 파격적인 공장 유치 전략 등이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실용외교를 성공할 수 있을까.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라고는 하지만 우리와는 너무나 문화가 다른 일본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냉정하게 접근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다. 정치 상황에 따라선 총리가 1년도 안 돼 바뀐다. 관료는 약해지고 의원들의 국정 장악력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도 의원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외교에는 여야가 없다. 의원들이 적극 나서 친한파 의원들을 많이 만들어야 큰 힘이 된다. 그런 기반 위에 정부와 민간 기업들이 긴밀하게 협조해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면 일이 잘 풀리기 때문이다. 후쿠다 총리의 장수를 위해 도울 건 과감하게 돕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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