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Art] ‘비단결 목소리’ 보첼리 파바로티 빈자리 메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50·사진)의 공연이 원래 열리기로 한 곳은 서울의 한 공연장이었다. 대관까지 확정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의 공연 출연료는 수십만 달러에 달하고 여기에 항공료만 10만 달러 정도가 더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000~3000석에 불과한 기존 콘서트홀에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계산이 나왔다. 대관이 취소되고 공연의 주최도 바뀐 것은 이처럼 그의 어마어마한 ‘몸값’ 때문이다.

결국 보첼리 콘서트는 1만여 명이 들어올 수 있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2일 저녁 열렸다. 보첼리는 1997년 데뷔한 후 앨범을 6000만 장 판매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0여 명 되는 스태프를 위해 전용기를 따로 띄우는 그는 이제 세계적인 거물급 가수다. 이날 객석을 채운 사람들은 파바로티와 스리 테너 이후 체육관을 만석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테너의 존재를 확인했다.

보첼리는 8년 전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게스트 출연에 가까웠고 이번이 첫 단독 콘서트였다. 그를 처음 만난 한국 청중은 이날 그가 어떻게 세계적인 스타가 됐는지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크레센도로 소리에 힘을 넣다가 갑자기 부드러워지는 창법은 보첼리만의 독특한 ‘특허 기술’이다. 성악과 팝페라의 중간 쯤에 있는 발성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노래에서도 이 기법을 발견하고 곧 보첼리의 목소리라는 것을 안다.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타오르는 불꽃’ 아리아를 부를 때나 팝페라 곡 ‘대지의 노래’를 부를 때도 보첼리만의 독특한 목소리가 빛을 발했다.

이날 체육관 공연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도 있었다. 무대 위에 설치한 마이크는 보첼리의 튼튼한 성대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소리를 냈다. 반면 무대 뒷부분에 위치한 100여 명의 합창단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와 같이 합창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하는 노래에서 감정이 전달되기 힘들었다.

하지만 보첼리는 상황이 열악해도 사람의 가슴속 깊은 곳을 파고드는 가수였다. 15곡을 내리 부르면서도 컨디션에 기복이 없었다. 보첼리 특유의 음성은 노래의 종류에 상관없이 계속 묻어나왔다. 앙코르 곡으로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에서도 11년 전 녹음한 음반과 실전 무대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오페라 가수로서의 보첼리를 발견한 것은 이번 내한 무대의 큰 소득이다. 이날 무대에 설치된 화면에는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한 장면이 나왔다. 보첼리가 ‘카바야도시’ 역으로 출연한 무대였다. 오페라 무대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보첼리를 위한 도우미가 필요하다. ‘토스카’의 연출자는 그를 위해 출연자를 더 집어넣었다. 화면 속에서 도우미들이 보첼리를 무대 위의 제자리에 ‘데려다’ 주면 그는 감정을 실어 노래를 시작했다.

보첼리는 올해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카르멘’ 무대에 선다. 이번 공연에서 7곡의 오페라 아리아를 선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클래식 음악의 테너로도 손색이 없다. 파바로티나 소화할 수 있었던 ‘하이 C(가운데 ‘도’에서 두 옥타브 위의 ‘도’)’를 보첼리 정도로 부를 수 있는 클래식 테너는 드물다. 또 클래식 오페라 아리아의 대표곡인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이날만큼 대중에게 큰 환호와 박수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보첼리를 체조 경기장이 아닌 오페라 하우스에서 만날 날을 기대하는 이유다.  

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