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 스테디셀러]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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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적:1975년 '문학사상' 12월호에 단편 '칼날' 발표.

본적: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연작 12편 엮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첫선.

현주소:2000년 이성과 힘에서 개정판 발간.

경력:2004년 3월 현재 73만부(176쇄) 판매.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속칭 '난쏘공'의 간략한 이력서다. 2년 전 계간 '문학인'과 한국문예창작학회가 공동 조사한 '20세기 한국 문학사 100대 소설'에서 최고 문제작으로 선정됐던 '난쏘공'은 지금도 '잘 팔리는' 작품이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국내 소설 6위에 올라 있다. 끈질긴 생명력이다.

하지만 '난쏘공'은 화려한 책이 아니다. 26년 동안 73만부, 1년 평균 2만8000부가 팔렸으니 선풍적 인기와 거리가 멀다. 작가 조세희씨는 2년 전 150쇄 돌파 당시 "섹스를 소재로 한 소설이 한달에 70만~80만부씩 나가는 현실에서 나는 실패한 작가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내용도 슬프다. 산업화.부동산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70년대 한국 사회의 그늘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씨는 공장 노동자 가족의 일상을 통해 도시 소외 계층의 험난한 삶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난쏘공'은 80년대 캠퍼스의 필독서였다. 어떤 이념, 사회과학 서적보다 우리 주변의 모순을 명징하게 제시, 이른바 '문학의 파워'를 보여주었다. 난장이로 상징되는 가난한 자와 거인으로 대변되는 가진 자 사이의 갈등을 축으로 고난의 70년대를 살아갔던 서민의 꿈과 소망을 형상화했다.

나아가 70년대란 시대적 상황을 뛰어넘어, 가난이란 인간의 보편적 조건을 간결한 문장과 따뜻한 눈길로 담아냈기에 2004년 현재에도 꾸준히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난쏘공'은 역설의 문학이다. 첫째, 현실과 이상의 충돌이다. 70년대의 사회 구조에 몰락했던 난장이 가족이 살았던 곳이 '낙원구 행복동'이었다. 둘째, 작가와 시대의 불화다. 조씨는 개정판 서문에서 "군인들이 무력으로 집권해 피말리는 억압 독재를 계속하지 않았다면 소설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낙원구 행복동'에 이를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곳이 있을까. 그 곳에 도착한다면 '난쏘공'은 영영 잊혀지고, 문학은 정지될 것이다. 최근 3년 '난쏘공' 판매가 소폭 늘어났는데, 이는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70년대는 우리의 오늘일 수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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