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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논단>韓銀지폐유출책임 金通委에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통화가 공신력을 상실할 때 시장경제는 마비 상태가 된다.최근한국은행에서 발행한 불법화폐유출사고는 통화의 공신력을 떨어뜨린중대한 사건이다.이번 사건은 한 기능직 사원의 절취행위를 떠나상위책임자들이 그것을 축소.은폐했다는데 더욱 문제가 크다.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중앙은행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은행 개혁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한국은행이 환골탈태하여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요구다.정부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의 조직과 예산을 대폭 축소하고 재정경제원의 업무감사를 부활시켜야 한 다는주장을 내놓고 있다.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려는 조치라기보다 한국은행에 대한 보복성 조치에 가깝다.실제로 무리하게기구와 예산을 축소하고 정부의 감독권을 허용할 경우 중앙은행의독립성을 훼손하며 오히려 통화신용정책의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특히 재정경제원의 업무감사권 부활은 통화신용정책의 실질적인예속을 의미한다.사고는 외부감독에 의존할 때 더 빈발한다.감독의 허점이 쉽게 발견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사고의 재발을 위해재정경제원의 업무감사보다 는 내부감독체계의 전문화가 더 필요하다.한국은행의 근본적인 문제는 현행 법체계에 있다.중앙은행의 생명은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으로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수있는가에 달려있다.권력이 중앙은행을 통제할 경우 발권력을 정치적으로 이용 함에 따라 국민들은 물가상승에 의한 일방적 재산손실을 입는다.우리나라의 경우 1962년 군사정부의 한국은행법 개정에 따라 한국은행이 재정경제원 산하기관으로 예속됐다.이에 따라 중앙은행은 통화가치 안정기능을 상실하고 정치논리에 따라 돈을 방출하는 권력의 私금고처럼 이용됐다.이로 인한 물가상승은국민재산을 무방비상태로 만들어 소득격차를 극도로 심화시켰다.
한국은행 개혁에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한국은행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다음 새로운 법체계아래서 한국은행의 조직.기능.인원.예산을 원점에서 다시 편성해 우리 경제에 걸맞은 선진화한 중앙은행을 갖추는 수■을 밟아 야 한다.최근 세계은행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71개국 중에서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64위에 머문다.심지어 네팔.케냐보다 뒤지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은행의 개혁에서 우선적 대상이 돼야 할 것이 금융통화운영위원회다.금융통화운영위원회는 통화신용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정책의 수립 뿐만 아니라 정책의 집행과 은행감독을 총괄한다.이번 화폐불법유출사고의 책임은 사실상 내부감독을 허술하게 한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 있다.그동안 금융통화운영위원회는 재정경제원의 하수기관 역할을 해오며 독립적인 통화신용정책운영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다.
89년 민주화의 열기에 따라 한국은행 독립이 실현단계에 이르렀을 때 법보다는 관행이라는 가식논리로 논의 자체를 무산시킨 것도 바로 금융통화운영위원회였다.결국 금융통화운영위원회는 중앙은행을 무력화하는데 앞장서왔다.그리고 그 대가로 엄청난 예산을낭비하고 있다.
과감한 개혁을 통해 중앙은행의 머리부분인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면 몸체에 해당하는 집행부와 은행감독원에 대한 개혁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어질수 있다.이 과정에서 통화신용정책의 집행과 은행감독의 효율성 극대화 차원 에서 불필요한조직.인원,그리고 예산은 과감히 감축해야 한다.이러한 한국은행개혁의 주체는 이해당사자인 정부와 한국은행이 돼서는 안된다.중앙은행이 국민의 은행인만큼 국민의 뜻에 따라 국회가 앞장서 법개정을 통해 실천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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