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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스타들의 장수 비결 '연습하고 기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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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가하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조금 여유가 생기고 초침 달린 시계가 가까이 있다면 TV에 비친 사람의 얼굴이 한 화면에 얼마나 지속적으로 잡히는지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드라마·오락·교양 등 장르를 불문하고 아무리 길어도 1분을 넘기는 일은 좀체 없다. 1분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의 얼굴만 계속 쳐다보기에 상당히 긴, 그래서 귀한 시간임에 분명하다.

기억하는 시청자가 더러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자정쯤에 MBC-TV를 켜면 한 젊은 아나운서의 얼굴을 1분 동안 볼 수 있었다. 제목도 ‘1분 뉴스’였다. 지금처럼 뉴스를 읽기 시작하면 자료화면이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당시 시청자는 줄곧 진행자의 얼굴만 바라봐야 했다. 그 얼굴이 볼 만했는지 여성 시청자들 중에는 일부러 그 시간을 기다렸다가 본다는 소문이 한동안 방송가에 돌기도 했다. “누가 뒤에서 밀어 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살짝 고개를 디밀었다.

비주얼이 괜찮았던 그 아나운서는 지금 같은 방송사에서 ‘100분 토론’을 몇 년째 맡고 있다. 손석희. 20년 새 100배로 늘었으니 성장률이 대단하다. 얼굴은 1분 동안 참고 지켜볼 수 있지만 20년 넘게 한 사람을 밀어 줄 파워맨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 힘은 오로지 당사자의 노력, 그리고 시청자의 평가에서 나온다.

대학가요제를 6년 동안 연출하면서 늘 진행을 부탁해도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이 ‘노(No)’였다. 대학은 조금 알아도 가요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없다는 거다. 참고로 필자인 나와는 ‘특수관계’(처남·매부)다. 거절당해도 흐뭇했던 건 그의 ‘심난’한 유머감각 때문이다. 모름지기 그의 성공은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일 것이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그의 전문성은 매일 아침 빛을 발한다.

외양이 멋진 축구스타 베컴에게 패션의 비결이 뭐냐고 묻는 건 실례다. 한국을 찾았을 때 기자들은 프리킥 잘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연습하고 반복하고 기억하라.” 손석희에게 영향력의 비밀을 물으면 어떻게 답할까. “경청하고 의심하고 질문하라.”

손석희의 독특한 억양을 흉내 내는 개그맨도 생겼다. 개인기로 자주 카피하는 말이 ‘시간 다 쓰셨고요’다. 그가 시간의 평등과 효율에 관심이 많은 걸 젊은이들도 눈치 챈 모양이다. 바빠서 자주 얼굴은 못 보지만 만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그를 발견한다. 삼국지의 노숙과 여몽의 고사에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이유가 수불석권(手不釋卷)이다. 책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상의 변화에 눈을 떼지 않는 한 그의 예리한 관찰·통찰·성찰은 지속될 것이다.

대학교수(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인 그의 고교 동기 중에는 ‘난타’ 제작자인 송승환(명지대 뮤지컬공연학과)교수도 있다. 둘은 친구들이 축구할 때 방과 후 학교 방송국에서 줄곧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교육개혁은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정상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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