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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재활용” 외국업체까지 가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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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여긴 티탄철(TiFe) 함량이 20%나 되네. 전체적으로 평균 7~8%는 되겠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유동(60) 연구원이 장난감총 모양의 기기로 측정한 바위의 광물 함량 결과를 탐사 동료들에게 알려준다. 옆에 있던 이미정(38·여) 연구원은 소형 망치로 바위를 깨 조각을 가방에 담고, 류충렬(47) 연구원은 암석의 균열 모양을 수첩에 그려 넣는다.

한참 뒤처져 따라오던 지세정(56) 연구원은 탐사 결과를 토대로 방안지 위에 꼼꼼하게 티탄철 지도를 작성했다. 일명 ‘광물 대동여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지 연구원은 “국내에도 잘 찾아보면 ‘돈’ 되는 광산들이 있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경남 하동군 옥종면 덕천강 지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광물자원연구실 소속 연구원 4명의 지표 조사 작업이 한창이다. 이들의 임무는 광물이 포함된 암석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주에도 이곳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조사 작업을 했다.

활기 되찾는 광산 탐사

국내 광산 탐사가 되살아나고 있다. 국제 금속 가격이 연일 급등하면서 경제성이 없다고 내버려뒀던 국내 지하자원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문을 닫았던 광산이 생산을 재개하는 경우도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난해부터 휴·폐광의 매장량 등을 재평가해 민간기업에 제공해 오고 있다. 지난해엔 25년간 문을 닫았던 강원도 동해시 이기동의 폐철광산을 조사하다 북쪽으로 70여㎞ 떨어진 지점에서 새로운 철광맥을 발견하기도 했다. 현재 ㈜씨에스자원개발이 이 일대의 철광석 매장량을 확인하는 정밀 탐사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선 몰리브덴 광산 개발이 가장 활발한 편이다. 몰리브덴은 ‘녹슬지 않는 철’인 스테인리스강을 만드는 데 쓰인다. 광업진흥공사는 지난해 4월 경북 울진의 금음 몰리브덴 광산 채굴을 시작했다. 2005년 탐사에서 370만t의 몰리브덴이 매장된 것을 확인하고 민간업체와 손잡고 개발에 들어간 이곳에선 올해 518t의 몰리브덴을 채굴할 계획이다.

1988년 문을 닫은 충북 제천시 금성 몰리브덴 광산도 최근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 광산 일대에 130만t의 몰리브덴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생산 장비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금성 광산 인근의 GS몰랜드 광산은 10월 몰리브덴 시험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밖에 경남 밀양시 산내 광산 등지에서 몰리브덴 탐사가 진행 중이다. 광업진흥공사는 국내 몰리브덴 생산이 늘자 지난해 전남 여수에 연간 6000t 처리 규모의 제련공장을 지었다. 이 공장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규모다.

이처럼 몰리브덴 광산 개발이 활발한 가운데 철과 금·은의 채굴을 재개한 광산도 있다. 강원도 정선군 신예미 철광산은 2005년 재가동에 들어갔다. 2001년 재개발에 들어간 지 4년 만에 생산을 재개한 이 광산은 지난해 포스코와 철광 공급 계약을 했다. 최근엔 신예미 광산 인근에 몰리브덴이 묻혀 있는 것으로 조사돼 매장량 등을 확인하기 위한 탐사 작업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또 전남 해남군의 은산 광산에선 금과 은이 생산되고 있다.

광업진흥공사 강천구(52) 실장은 “각국이 자원민족주의를 내세워 광물 수출을 통제하면서 국내 광산이 재조명되고 있다”며 “탐사 전 단계인 자료 검토 과정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개발이 진행 중인 광산이 전국적으로 15개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광산은 개발 조건 유리”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상동 광산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텅스텐 채굴이 활발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채산성이 떨어져 문을 닫는 광산이 하나 둘씩 생겨나더니 2000년대엔 인구가 한창 때의 10분 1 수준인 2000여 명으로 줄었다.

이랬던 상동읍이 2년 전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캐나다계 광물업체 오리엔탈 미네랄즈가 2006년 초 상동 광산을 매입하고 그해 11월 광산 탐사를 재개한 덕분이다. 10년 넘게 잊혀졌던 상동 광산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04년 텅스텐 가격이 폭등하면서다. 93년 t당 38달러까지 떨어졌던 텅스텐 가격은 2004년 84달러로 오르더니 2005년 223달러, 2006년 261달러, 2007년 248달러로 폭등했다. 14년 만에 6배 이상으로 오른 셈이다.

현재 상동 광산은 사업 타당성을 조사 중이다. 시추공을 뚫어 샘플을 채취한 뒤 암석 속 텅스텐과 몰리브덴 등의 함유량을 검사하고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15일 오후에도 9명의 작업자가 3곳의 시추공에서 지질 샘플을 채취하고 있었다. 오후 3시쯤 채취한 샘플엔 ‘SD-76-24’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상동 광산 76번째 시추공의 24번째 박스라는 뜻이다. 이들 작업자는 매일 10여 박스의 암석 샘플을 채취해 텅스텐과 몰리브덴 등의 함유량을 검사하고 있다.

오리엔탈 미네랄즈는 이르면 2011년 상동 광산에서 텅스텐과 몰리브덴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이 국내 광산 개발에 뛰어든 것은 2000년 캐나다계 광물업체 아이반호가 전남 해남군 은산 금(金)광산을 개발한 이래 두 번째다. 은산 광산은 2004년 국내 기업이 인수해 계속 금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산 텅스텐의 수급이 불안정한 것도 상동 광산 재개발 추진에 한몫했다. 김완중 오리엔탈 미네랄즈 코리아 사장은 “중국산 텅스텐이 아직까지 가격 경쟁력이 있지만 수급 물량이 널뛰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산 텅스텐이 생산을 재개하면 물량을 안정적으로 댈 수 있어 가격이 비싸도 수요처를 찾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희 오리엔탈 미네랄즈 고문은 “상동 광산엔 텅스텐·몰리브덴 등이 10억t 이상 매장돼 있어 예상 가치가 600억 달러에 이른다”며 “생산을 시작하면 하루 6000~9000t의 텅스텐과 1만t 이상의 몰리브덴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리엔탈 미네랄즈는 상동 외에 충북 음성·옥천과 충남 청양, 전남 가사도 등 4개 광산의 재개발에 대해서도 사업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금·은·납·아연 등 기존에 생산하던 광물은 물론 우라늄 등 새로운 광물의 생산에 대한 채산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한국 광산 투자 결정은 꾸준한 연구 끝에 이뤄졌다.

오리엔탈 미네랄즈 본사엔 특급 대우를 받는 30명의 광산 기술자가 근무 중이다. 전 세계 광산을 케이스 스터디하는 오리엔탈 미네랄즈 기술진은 2003년 한국의 주요 광산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이후 한국에 정통한 지질 전문가들이 국내 탐사를 실시한 뒤 2006년 최종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 이 회사의 빌 케이블 이사는 “한국은 운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포스코·고려아연 등 대규모 수요처가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광산 개발이 유리하다”며 “상동 광산은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박성희 고문은 “한국에 자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없는 것”이라며 “우리 자원도 잘 쓰면 큰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택·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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