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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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인도의 옛말인 범어(梵語)에도 「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로는 「마귀 마(魔)」「깁 라(羅)」와 같은 글자로 표기되어 왔지요.「수도(修道)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라거나 「마귀」를 의미했습니다.하지만 일본 옛말 「마라(まら )」는 우리옛말 「마라」와 같이 원래 「머리」라는 뜻이었어요.이것이 훗날남성의 상징을 가리키게 됐지요.우리나라나 일본의 옛절에서도 「마라」는 남성의 상징을 두고 부르는 은어(隱語)로 삼아졌댔는데,이 경우는 범어의 뜻까지 포개어 빚어진 낱말일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언어는 이미지에서 태어나는 생물과 같다고 나선생은힘주어 말했었다.
말의 역사는 바로 문화의 역사다.
아리영도 전부터 말의 역사에 매력을 느껴왔다.특히 삼국시대의말에 관심이 있었다.고구려.백제.신라의 말이 서로 어떻게 달랐으며,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의 우리말이 됐는지 궁금했다. 궁금증은 또 있었다.
삼국시대에 우리 문화와 더불어 홍수처럼 일본을 뒤덮었던 우리옛말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중의 얼마만큼이 오늘의 일본어가 돼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나선생이 그 일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반가웠다.
『일본 옛책을 보고 있으면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민속이라든가 기술에 관한 일본 옛말 가운데 우리말이 고스란히 살아 남아있거든요.건축,미술,의술,요리,불교나 샤만의 종교의식 용어에까지 엄청나게 발견됩니다.』 나선생은 신이 나는 듯했다.
『가령 일본 옛말로 「의사」를 「구스시(くすし)」라 했습니다.「구스리시(くすリし)」라고도 했어요.「약」은 「구스리(くすリ)」.이 「구스리」는 현대어이기도 합니다.요즘의 일본말로도 「약」은 「구스리」예요….』 일본말 「구스리」는 우리 옛말 「구슬리」가 변모한 것이라 했다.「토닥거리다」란 뜻의 「구슬리다」의 옛 명사가 「구슬리」다.그리고 「구스리시」「구스시」는 「구슬리지」,즉 「약짓는 이」를 가리킨 말이라는 것이다.우리말의 「ㅈ」소리는 일본에 가면 대체로 「ㅅ」소리가 되어버린다.그래서「구슬리지」는 「구스리시」,줄여서 「구스시」라 불리게 됐다는 것이 나선생의 견해다.마라도에서의 그는 아주 생기있어 보였다.
『일본서기(日本書紀)』 역시 왜왕 윤공(允恭)의 병을 고친 명의(名醫) 김파진한기무(金波鎭漢紀武)를 「구스시」라 적고 있다.「한기무」란 의사의 관직명이나 존칭 같은 것이었을까.
『의심방(醫心方)』에 보이는 신라 법사 유관(流觀)도 「구스시」,아니 「구슬리지」였다.권제28의 방내(房內)편만이 아니라권제2 복약주(服藥呪)등에 「신라법사방(新羅法師方)」이라는 처방이 자주 보인다고 권말의 해설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임신 비방술(비方術)은 유관스님의 가르침은 아니다.중국의 기발한 주술(呪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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