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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holic] 영월, 슬픔이 봄을 휘감아 흐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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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죽은 어린 왕을 위로하듯 쭉쭉 자란 청령포 소나무들. 영월에선 25일부터 이틀간 단종문화제가 열린다.

동강 래프팅만 후다닥 다녀온다면 영월을 알기 힘들다. 천천히 걸어야 산이 보이고 숲이 눈에 들어온다. 느긋하게 둘러봐야 물이 가슴에 들어온다. 단종의 슬픔이 애잔한 땅, 영월은 지금 신록의 잔치가 한창이다. 

글=설은영·장치선 객원기자 (skrn77@joins.com)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유배당한 어린 왕의 애달픈 이야기

서울에서 중앙선~태백선 기차를 타고 세 시간 남짓 달리면 영월이다. 하지만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쉽사리 영월 역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여느 역사와 사뭇 다른 외관 때문이다. 기와 지붕과 화려한 단청. 영월역을 드나드는 하루 평균 300여 명의 방문객은 역사를 구경하느라 한참씩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영월역에서 느긋한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면 관풍헌에 이른다. 영월은 산속에 자리 잡은 조용한 소도시다.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본 사람이라면 한결 더 살갑겠다. 마을 어디에서나 바라보이는 계족산 봉우리 덕에 아늑한 기분도 든다.

영월에서 관풍헌까지 가는 길에 색색의 축제등이 눈길을 끈다. 25일부터 열리는 단종문화제를 알리는 ‘신호등’이다. 단종은 세조에게 쫓겨난 뒤 여기서 삶의 마지막을 보냈다. 영월에서는 이를 추념하기 위해 매년 문화제를 연다. 꼭 문화제 때문이 아니더라도 관광객들은 관풍헌을 자주 찾는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 단종이 시를 짓곤 했다는 자규루에서 올라 지친 다리를 쉬어가자.

사슴이 안내했다는 무덤, 장릉

관풍헌 다음 코스는 단종이 유배 생활을 했던 청령포. 버스를 타고 10~15분이면 닿지만 트레킹 삼아 걷는 것도 좋다.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한 시간쯤 걷다 보면 수백m의 느티나무 길이 나온다. 걷는 이들의 호위병 같다. 언뜻언뜻 드러나는 동강·서강의 물줄기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싱그럽다.

청령포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채 5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강을 건너는 기분이 색다르다. 청령포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빼곡한 소나무 숲.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하늘을 향하지 않고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600살짜리 천연기념물 관음송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령이다. 단종이 걸터앉아 말벗을 했던 소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단종어가는 단출한 기와다. 이맘때면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어올라 한층 더 소박해 보인다.

청령포에서 다시 배를 타고 나와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단종의 묘인 장릉이 나온다. 원래 왕의 무덤은 서울에 있어야 하지만 단종의 것만 여기에 있다.

12세 때 왕위에 올라 17세에 사약을 받은 어린 왕의 시신은 거두는 사람이 없어 강을 떠돌았단다. 보다 못한 영월의 하급관리인 호장 엄홍도가 시신을 지고 산에 오르자 갑자기 어디선가 사슴이 나타나 무덤 자리를 안내했다고 한다. 장릉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한 어가(御家).

장릉에 들어서면 단종을 모셨던 충신들의 제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작 단종의 무덤은 계단을 따라 소나무 숲으로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 세월의 주름이 밴 느릅나무와 600년도 더 됐다는 수양나무, 향나무·회화나무·소나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청솔모와 다람쥐가 바삐 오간다.

영월역~관풍헌~청령포~장릉에 이르는 거리는 약 10km다. 한나절이 걸리지만, 이야기가 있는 풍경이라 권할 만하다.

Tip

■ 단종문화제=단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내던 고유제(신에게 중요한 일을 알리는 제사)를 지방문화축제로 계승했다. 관풍헌에서 장릉까지 단종의 장례 행렬을 재현하며 칡 줄다리기, 대왕 신령굿, 전통 궁중 줄타기 등의 공연도 펼쳐진다. 1967년 시작해 올해로 42회째. 25일부터 이틀간 열린다. 영월 관광정보 ywtour.com, 1577-0545.

■ 박물관 기행=영월에는 크고 작은 박물관이 많다. 자녀와 영월을 찾았다면 함께 돌아보자.

-조선민화 박물관: 조선시대 진본 민화를 많이 갖고 있다. 전문 해설가의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청전전각 박물관: 칼로 돌이나 나무, 상아, 대나무 뿌리에 문자를 새겨 넣은 전각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동강 사진 박물관: 지역민 등이 사진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마련된 공공 박물관이다.

-영월 국제 현대 미술관: 폐교를 활용해 만든 미술관. 국내외 여러 화가의 작품을 전시한다.

-영월 화석 박물관: 영월에서 발견된 고생대·중생대 화석들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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