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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단의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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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결승 3번기 3국>
○·박영훈 9단(1승1패) ●·이세돌 9단(1승1패)

제5보(49~55)=백△의 돌파는 매우 치명적으로 느껴진다. 아래쪽의 백 세력과 어울려 그 위력이 증폭되고 있다. 패싸움이 난 것도 아닌데 이런 돌파를 태연히 허용한 이세돌 9단의 머릿속은 어떤 계산이 오가고 있을까.

우선 상변 백진을 납작하게 만들면 백◎가 허수가 된다. 능률을 최우선으로 하는 바둑에서 상대의 돌을 비능률로 만드는 것은 대단한 효과가 있다. 수읽기의 득실을 따지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둘째, 흑이 상변을 무너뜨리고 살면 이 부근의 백집을 제로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셋째, 흑▲는 아직 살아 있는 돌이며, 뒷맛이 풍부하다. 이세돌 9단은 특유의 만용(?)을 부린 게 아니라 특유의 개성으로 국면 전체를 보고 있었다.

51로 젖히는 수가 흑의 자랑. 박영훈 9단은 지체 없이 52로 제압했는데 이 수를 손빼면 ‘참고도’ 흑2부터 8까지 통렬한 반격에 휘말리게 된다. 53의 이단젖힘까지가 백△의 돌파를 허용할 때부터 읽어둔 이세돌의 기나긴 수읽기다. 흑은 이미 살았고 이 다음은 너무 복잡해 더 이상의 수읽기는 그만뒀다. 하지만 백은 이때 또 한 번의 중대한 기로를 맞게 된다. 54의 단수는 일단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그 다음 백은 A쪽으로 젖힐 것인가, 아니면 B로 젖힐 것인가. B로 젖히면 간단하지만 A로 젖히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 승부와 직결된 결단의 순간이 찾아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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