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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광복50돌 일본은 변하지 않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일본의 전후(戰後)50년은 그들 스스로의 표현대로 「기적의 50년」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지난 46년 3조7천9백20억원이던 일본의 국민총생산(GNP)은 작년도에는 3경7천7백70조8천2백40억원으로 무려 1만배 가까이 불어났다.올해 7월말 현재 외환보유고는 1천5백84억달러로 7개월째 세계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50 년간 쑥쑥 자라난 국력에 걸맞게 무언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일본은 지금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이 경제력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 지도력을 행사할 만한 정당성과 비전을 갖추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특히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전후 청산작업이 지난 50년간 과연 얼마나 진전되었는가가 중요한 척도가 되지않을수 없다.
지난 5일 일본을 방문한 폰 바이츠제커 前독일대통령은 연설을통해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盲目)이 된다』며 일본의 과거사죄와 전쟁피해자에 대한 철저한 배상을 촉구했다.
그러나 연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침략이냐 아니냐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시마무라 요시노부(島村宜伸)신임문부상의 망언이 이어졌다.과거사관련 망언의 대표선수격인 오쿠노 세이스케(奧野誠亮)前법무상은 지난 9일 지지(時事)통신과 의 인터뷰에서 종전의 억지주장을 되풀이했다.
『식민정책에서 일본은 백인처럼 우민(愚民)정책을 취하지 않았다.학교들을 세워 교양수준을 높이고 발전의 기초를 만들어 주었다.일본의 일부 사람들이 한국이나 중국이 말하는 대로 동조하는것은 유감이다….』많은 일본지식인들이 오쿠노類■ 망 언을 부당하다고 여기고,부끄럽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도자급 인사들의 주된 인식수준은 과거사 청산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최근의 참의원선거에서 바람을일으킨 야당인 신진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간사장은 한국등의 과거사죄 요구에 대해 『엎드려 절이라도 하라 는 말이냐』고짜증을 낸 적이 있다.
지도층의 왜곡된 사고는 바로 교육에 반영되게 마련이다.이달초돗토리(鳥取)縣의 한 고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전후50년에 즈음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강제연행」에 대해 「포로를 강제로 수용소에 끌고 가는 일」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6 8.1%,「종군위안부」는 「전시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간호부」라는 응답비율이 32.4%나 되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간판격으로 내세우는 것은 세계유일의 피폭(被爆)국가,평화국가라는 이미지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원폭논의는 「미국의 원폭실험의 희생양」이라는 피해자 측면만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나머지 이방인의 눈에는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지는 감마저 든다.
국내적으로 일본은 전후 50년을 맞아 「방향성 상실」증후군에시달리고 있다.국력신장이라는 목표 하나로 50년을 보내왔으나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야 할지 도대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냉전종결및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계기로 경제版 「新대동아공영권」구상이 제기되고 아시아로 복귀하자(脫歐入亞)는 주장이 나오는 등 일본의 위상과 목표에 대한 제안들이 무성하지만 아이디어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최대의 외환보유국이면서도 엔高와 산업공동화(空洞化).부실채권 문제들로 불안에 떨고 있다.갖가지 사건.사고로 일본이 자랑하던 「안전대국」신화마저 무너지고 있다.특히 올해 일본 열도를 강타한 오움진리교 사건은 사건 자체보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젊은이들의 특이한 사고방식 때문에 기성사회에 더 큰 충격을 주었다.「기적의 50년」을 만들어 온 일본이 정작 「평범한 선진국」으로 정착하는 작업에는 힘겨워하고 있는 것같다.
[東京=盧在賢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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