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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오골계도 AI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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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어디로 피난을 가야 할지 막막하네요.”

충남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서 천연기념물 265호 오골계를 기르는 이승숙(46·여)씨는 15일 “1년 반 전에 겪었던 조류 인플루엔자(AI) 악몽이 재연될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8250㎡(2500여 평)의 농장에서 오골계 종계 2000여 마리, 병아리 7000여 마리를 키우는 있는 ‘오고리 엄마’로 알려져 있다.

이씨는 “최근 문화재청 관계자가 ‘40분 거리에 있는 익산시 황등면 농장에서 AI가 발견됐고, 농장 주변에서 AI가 발견되면 문화재인 오골계를 살처분해야 할지 몰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전했다. 전북 김제에서 발병한 AI가 전남·경기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피난을 떠나라는 것이다.

그녀는 2006년 12월에도 한 차례 ‘피난’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당시 오골계 2000여 마리를 끌고 인천 앞바다에 있는 무이도와 경기도 동두천 등으로 4개월 동안 떠나 있었다. 피난 도중 농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도로를 막는 바람에 고속도로에서 쫓겨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재래종 오골계는 가금류 중 유일한 천연기념물이다. 벼슬과 깃털·눈동자는 물론 뼈까지 검은 색을 띠고 있으며 성장 기간이 8개월로 일반 닭보다 5배 이상 길다. 전국에 오골계를 키우는 농가는 몇 곳이 있지만 순수 혈통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1980년)된 곳은 이씨 농장뿐이다. 6대째 오골계를 기르는 이씨는 국가 지정 사육인이다.

오골계에겐 일반 사료 대신 현미·숯·황토·미네랄 등 각종 영양제를 첨가한 ‘특별식’ 사료를 먹이고, 사육장 소독제도 화학약품이 아닌 목초액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씨는 “오골계는 재래종이라 강인하고 특히 숯· 황토 등을 먹여 면역력이 높다”며 “그래도 AI를 피하려면 먼 곳으로 가야 하는데 다들 ‘오지 말라’고 거부한다”고 말했다.

◇AI 경기도로 북상=AI가 경기도 평택시에서도 발견됐다. 지난 1일 전북 김제시 용지면에서 AI 첫 신고가 들어온 이후 보름여 만에 경기도로 확산한 것이다. 방역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15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평택시 포승면 석정리 김모(66)씨의 농장에서 집단 폐사한 닭을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조사한 결과 AI로 확인됐다. 김씨의 농장에서는 13일 오후 닭 350여 마리가 갑자기 죽었다. 전남북 이외의 지역에서 AI가 발생하기는 처음이다. 평택은 AI 최초 발생 지역인 전북 김제와 정읍은 물론이고 전남 영암·나주와 200㎞ 이상 떨어져 있다. 이에 따라 이달 1일부터 지금까지 4개 시·군, 12개 농가에서 21건의 AI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죽여 파묻은 닭과 오리는 190만 마리가 넘었다.

◇아직 원인도 못 찾아=AI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온이 낮은 11~12월에 발생해 따뜻해지는 3월이면 사라졌다. 겨울 철새가 주범으로 몰렸다. 하지만 올 들어 AI는 4월에 발생했다. 그래서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 근로자가 바이러스를 옮겨 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변형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144가지에 달하는 바이러스 변종에 의한 감염 가능성에 대해서도 무게를 두고 역학 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직 시베리아로 돌아가지 않은 겨울 철새에 의해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조사에서는 시베리아로 돌아가지 않은 철새가 많이 발견됐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역학 조사를 강화하고, 고병원성으로 확인되면 3㎞ 안의 닭과 오리를 모두 죽여 묻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장대석·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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