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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yle] 싱글몰트 위스키의 ‘향긋한 중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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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 증류소에서 한 가지 품종의 보리로만 만든 위스키를 싱글몰트 위스키라 한다. 대를 잇는 장인정신과 수량의 희소성에 있어 단연 최고급 주류로 꼽힌다. 따라서 싱글몰트 위스키는 숙성 기간에 관계없이 수퍼 프리미엄(블렌디드 위스키의 경우 17년산 이상)으로 분류한다.

두 종류의 사회가 있다. 위스키를 보고 싱글몰트인지를 따지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다. 묘하게도 이 구분은 국민소득 2만 달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만 달러를 넘어서면 대체로 ‘따지는’ 사회로 진입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어떤 술인가? 우리나라에서 많이 팔리는 대중적인 위스키는 대부분 블렌디드 위스키다. 보리로 만든 맥아 위스키 원액과 잡곡으로 만든 곡물 위스키 원액을 섞어서 만든다.

몰트 위스키는 이들과 달리 100% 맥아만을 원료로 한다. 그중에서도 한 증류소에서, 한 가지 품종의 보리로만 만든 것을 싱글몰트 위스키라 한다. 애주가들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마시는 술의 하나로 꼽는다. 동시에 산업 측면에서는 와인과 함께 주류 시장 성숙도를 측정하는 기준의 하나로 평가한다. 도수는 일반 위스키와 마찬가지로 보통 40도다.

◇와인, 재즈, 그 다음은 싱글몰트?=1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는 시점이 되면 유행하는 품목들이 생긴다. 와인·재즈와 함께 싱글몰트 위스키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 이후 일본, 90년대 이후의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그랬다. 비록 환율 덕이 컸지만, 우리나라는 2007년 말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찾는 사회로 들어선 셈이다.

이는 주류 판매 통계로도 확인된다. 주류 수입회사 맥시엄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일반 위스키 시장은 6.6% 성장했다. 반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48.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얼마 전부터 수입된 맥캘란은 같은 기간 판매 성장률이 무려 66.2%에 달했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유행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소비 패턴의 변화와 딱 맞아떨어진다. 조금 더 고급스럽고, 특별하며, 전통이 있는 것을 찾는다는 얘기다. 싱글몰트 위스키 여부를 따지는 것은, 비유하자면 애완견의 품종과 혈통을 구분하는 것과 흡사하다. 단순한 애완견 기르기를 넘어서는 취향인 셈이다.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증류소 각각이 고수하고 있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오랜 숙성 과정에서 비롯된 뛰어난 맛과 향에서 우러나는 가치와 의미를 함께 소비하는 것이다.

◇와인처럼 즐기는 맛과 향=꽃다발, 건포도, 마른 나무, 탄닌, 토스트. 와인의 맛과 향을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싱글몰트 위스키 역시 와인처럼 브랜드 및 숙성 기간별로 특징적인 맛과 향을 느껴보는 재미가 있다. 세계적인 위스키 전문가인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 대학의 데이비드 위셔트(David Wishart·65) 교수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스타일을 12가지로 분류했다. 달콤함(sweetness), 스모크향(smoky), 무게감(body), 쓴맛(medicinal), 담배맛(tobacco), 꿀맛(honey), 매운맛(spicy), 와인맛(winey), 견과류맛(nutty), 맥아맛(malty), 과일맛(fruity), 플로랄향(floral).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고유한 색깔과 깊고 부드러운 느낌도 와인과 흡사하다.

마시는 방법도 와인과 비슷하다. 먼저 튤립 모양의 전용 잔에 따라 색을 감상한다. 그 다음 잔을 흔들어 향을 느끼고, 혀를 이용해 조금씩 굴려 넣는다. 향을 앗아가 버리기 때문에, 가능하면 얼음은 넣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본의 소설가이자 탐미적 애주가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59)가 자신의 저서 『위스키 성지 여행』에서 천사의 음악에 비유한 그 맛이다. “맛 좋은 아일레이(스코틀랜드의 섬) 싱글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단 말이요? 그것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그러나 빨리 취하기 위해 위스키나 폭탄주를 마셨던 보통 사람의 혀로는 당장 싱글몰트를 감별해내기가 쉽지 않다. 와인이 그렇듯,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주 음미해야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더욱이 천사의 공연은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에 비해 한결 더 비싸다. 그 미묘한 차이를 위해 거액을 지불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그 맛과 향, 그리고 스타일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하면 돌이키기가 힘들어진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기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인 전용 잔과 마음이 맞는 친구, 그리고 여유로운 시간을 더욱 빈번하게 찾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마치 ‘2만 달러 경제’를 한순간에 과거로 되돌릴 수 없듯.

글=이여영·김민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촬영 협조=coffee bar K

▶전용 잔 혹은 와인 잔으로=싱글몰트 위스키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전용 잔이 필요하다. 전용 잔의 윗부분은 나팔꽃처럼 밖으로 말려있다. 잔 끝에 입술을 대면 아랫입술이 찰싹 달라붙는다. 잔을 기울여 혀끝을 위스키에 댄다. 혀끝은 단맛을 가장 잘 전달하는 곳. 혀의 꼭대기로 단맛과 특유의 부드러운 크림맛을 먼저 느껴본다. 혀를 거쳐 목구멍으로 위스키를 천천히 흘려 보낸다. 이렇게 하면 목구멍으로 바로 집어넣는, 기존의 스트레이트 잔을 이용한 원샷보다 술의 맛을 훨씬 더 진지하게 느낄 수 있다. 전용 잔이 없을 경우에는 입구가 작고 둥근 코냑 잔이나 와인 잔도 괜찮다.

▶향과 맛을 음미하려면=보통 전용 잔의 1/3까지만 따른다. 그래도 일반 위스키 스트레이트 잔보다 두 배 정도 많은 양이다. 한 번에 마시든, 여러 번 나눠 마시든 그건 자기 마음이다. 다만 술술 넘어가는 부드러움을 맛볼 사람이라면 나눠 마시는 방법을, 속에서 끓어오르는 향을 즐기려면 한 번에 마시면 좋다. 싱글몰트 위스키 전문가와 애호가들은 실온(약 20도)에서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얼음을 넣으면 풍부하고 아름다운 향이 충분히 퍼져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혀가 마비돼 미세한 맛을 정확히 느끼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스트레이트로 여러 잔을 마시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에는 탄산이 없는 물을 섞어도 된다.

▶안주는 견과류·치즈가 좋아=안주는 싱글몰트 위스키 자체의 맛과 향을 방해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담백한 치즈나 견과류의 고소한 맛은 위스키의 향과 잘 어우러진다. 수분 섭취를 도와 알코올 도수를 낮춰주는 수박, 멜론 등 계절에 맞는 신선한 과일이나 달콤한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도 좋다. 식사와 함께 위스키를 즐길 때에는 칼로리가 높고 맛이 진한 음식보다는 단백질이 많은 육류나 생선 요리가 어울린다. 향을 음미하는 아이템인 시가와 다크 초콜릿 역시 싱글 몰트 위스키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단골 메뉴다. 식사 후에 마실 경우 아이스크림, 커피를 곁들이면 소화를 촉진시킬 뿐 아니라 입맛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독해서 부담스럽다면=칵테일로 즐겨보자. 싱글몰트 위스키 원래의 맛과 향은 줄지만 다른 주류를 원료로 한 칵테일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숙취도 덜하다. 스트레이트 잔으로 위스키를 두 번 붓고 그 위로 잘게 간 얼음을 넣는다. 신선한 생강 약간과 오렌지 껍질을 첨가하면 동양적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깔끔하게 마시고 싶다면 녹차를 이용한다. 위스키 50㎖에 녹차 2스푼과 민트 잎사귀 5개를 섞는다. 위스키용 얼음 위로 흘려 3분 후 마시면 된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주스와도 잘 어울린다. 위스키 더블샷에 오렌지 주스(신맛이 강한 것으로) 5㎖와 잘게 간 얼음을 섞는다. 싱글몰트 위스키 칵테일을 만들 때 주의할 점은 딱 하나다. 비싸고 오래된 것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12년산을 이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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