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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아르만드 코펜스 "어느 포르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나는 노상의 간이 서점을 보면 멋진 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참지 못하고 뛰어가는 부류의 사람이다.그러나 불속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멀리서 카바이드 불빛을 발견하고 가슴 두근거리며 뛰어가곤 했던 난전에는 더이상 나의 가슴 을 두근거리게 하는 책이 없다.
독자의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 하나같이 불그스럼한 색상의 표지를 한 탓에 「빨간책」이라고 불렸던 포르노 소설들은 이상하게도그 수요가 사라지지는 않았을텐데 공급이 멈추었다.하지만 나의 서가와 뇌리 한쪽에는 남성의 백일몽을 충족시켜 주던 그 책들이보관돼 있다.
포르노 소설을 단죄하는 사회 여론의 지도자들은 포르노 소설이청소년들의 성범죄를 부추기기 때문에 금지돼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공인된 기관에서 행한 어떤 조사는 포르노를 접한 청소년이과연 성범죄를 일으키느냐의 여부는 이성 친구의 유무,부모의 결손 유무,성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할 수 있는 대화상대의 유무,상급학교로의 진학가능성 유무에 따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노가 곧장 성범죄를 일으키게 만든다고 믿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우스갯소리,이를테면 고리키의 『어머니』가 러시아 혁명의 방아쇠를 당기고 스토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노예해방전쟁의 불씨가 됐 다는 농담도믿어야 한다.
사디즘.마조히즘.동성연애.페티시즘.동물애증.관음증.이성복장착용.소아기호증.기로증.시체애증.근친상간등의 아무리 과격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포르노 소설은 본질적으로 상투적이다.
내용이라 봤자 『탁자 위로 올라가 엎드려.그래 바로 그거야.
그런 다음 엉덩이를 조금 들어』따위가 고작이고,형식은 점층되는성행위의 강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부챗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서점을 전전하며 초판본.한정본.희귀본.수사본과 같은 고가의 포르노 서적을 수집하는 아마추어 수집가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어느 포르노 수집가의 회고록』도 예외는 아니다.주인공은 엄청난 책값을 절약하기 위해 아예 서적상이 돼 포르 노광들과 출판인.작가를 차례로 만나면서 그들의 기쁨과 고민을 엿본다.
그토록 닳을대로 닳은 상투성이 되풀이 즐겨 읽힐 수 있는 비결은 포르노 소설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동심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즉 우리는 포르노 앞에서 마치 성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그런 준비가 없다면 포르노는 환멸일 뿐이며,동심으로 되돌아간자에게만 그것은 순수한 악의 세계,금기의 세계,호기심의 세계의문을 열어 준다.
나는 비판적이고 생산적인 독서 능력 앞에서 나쁜 책은 없다고믿지만,그러나 몇 가지의 강력한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에로 서적이 간간이 금서에 묶이는 해프닝을 납득하고자 한다.그것은 포르노가 나빠서가 아니라 인간이나 사회 스스로가 자기 능력의 한계를 설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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