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 모국어 모두 공식어 인정 … EU 통·번역비 연 1조7천억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공식 언어 23개를 통·번역하는 1년 예산만 1조7000억원이 든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사실이다.

1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집행위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통·번역 비용으로 11억 유로(약 1조7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통·번역 비용이 천문학적인 것은 각국 모국어를 모두 공식어로 인정하는 EU 정책 때문이다. 현재 회원국이 27개인 EU의 공식 언어는 23개. 올 1월 새로 가입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고유어와 기존 가입국인 아일랜드의 게일어가 추가되면서 공식 언어가 3개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 언어가 사용하는 알파벳도 라틴·그리스·키릴 등 3개나 된다. EU 번역 담당 사무국의 칼 뢴토르 사무국장은 “EU 시민 가운데 2억∼3억 명은 모국어를 하나밖에 모른다. 모든 사람이 모국어로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EU에서 새로 제정되는 법규는 23개 공식 언어로 번역을 마친 뒤에만 발효된다. 대사급 회의에서는 영어·프랑스어·독어 등 3~4개 언어에 한해서만 동시통역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EU 정상회의와 각료급 회의 등 주요 회의에서는 23개 언어 모두로 동시통역이 이뤄진다. 이런 회의장에서는 23개 언어마다 3명씩 무려 69명의 동시통역사들이 등장한다.

집행위 통·번역 총국은 하루 평균 50~60회에 달하는 회의에 700~800명의 통·번역가를 투입하고 있 다. 통·번역 인력은 프리랜서를 포함해 3000명이 넘는다.

그러나 EU 공식 언어가 계속 늘어나자 “이러다간 새로운 바벨탑을 쌓게 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레오나르드 오르반 EU 언어 담당 집행위원은 “다언어 사용은 EU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비용”이라고 반박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 지구촌 국제뉴스 - CNN한글뉴스 & Live Radio AP월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