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꽃을 든 남자가 아름답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집에 DVD가 몇 장 있다. 우울한 날, 심심한 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런 때는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마저 두려워져 늘 검증된 것들 중에서 선택해 다시 돌려 보는 게 내 방식이다.

그렇게 가끔 다시 보는 영화 중에 ‘대통령의 연인’이 있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대통령으로, 아네트 베닝이 그의 새로운 연인으로 등장하는, 말하자면 ‘대통령의 연애 스토리’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세상에 그런 정치인이 없다는 걸 알지만), 세상의 모든 권력을 다 소유한 것 같은 대통령이 풋내기 청년처럼 연애를 하느라 좌충우돌하는 스토리가 몇 나온다. 그중 재미있는 게 바로 연인에게 꽃을 선물하는 일화다. 꽃집에 전화를 해 택배를 하려고 시도하지만 신용카드가 없어서(정말 대통령이 되면 개인 신용카드는 사용을 안 하나?) 실패하고 대신 햄을 보내게 된다. 그것이 아쉬웠던 대통령은 중요한 일로 공항에 가던 길에 눈에 띈 꽃집에 차를 멈추고 비로소 직접 꽃을 사 그녀에게 보낸다는 얘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대통령이라도(왜냐하면 영화 속 대통령은 나이도 많고 홀아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렇게 순진해질 수 있는 걸까. 왜 대통령은 꽃을 사려고 그렇게 애를 쓴 걸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남자에게 꽃이 그렇게 대단한 의미인가.

연애하면서 연인에게 꽃 한 번 선물 안 해 본 남자는 없을 것이다. 왜 꽃일까? 여자들이 꽃을 좋아하니까. 그럼 왜 여자들은 꽃을 좋아할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꽃이 가장 ‘만만한 선물’이라는 거다. 그녀의 취향을 몰라도, 돈이 없어도 쉽게 살 수 있는 물건. 그리고 꽃을 받고 싫어하는 여자는 없으니까.

당신이 마지막으로 꽃을 산 게 언제인지 헤아려 보자. 장담하건대 서른 살 중반 이후의 나이라면 기억조차 안 날 것이다. 이 칼럼을 보고 제일 많이 토를 다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 줘도 ‘뭐 하러 쓸데없는 데 돈을 썼느냐’는 구박만 받을 걸 왜 해.” 남자들이 들뜬 가슴으로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뛰어가던 시절을 잊고 산 만큼 여자도 꽃을 받는 기쁨을 잊어버린 걸 왜 모르십니까.

시인 엘리엇의 말처럼 ‘4월은 잔인한 달’이다. 크리스마스, 새해, 설… 봄이라고 시작되는 건 왜 그리 많은지 챙겨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5월에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다. 그렇게 끼인 달이 4월이고, 그래서 수많은 아내에게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이다. 그 고단한 마음을 달래주자.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선물로. 설사 아내가 “쓸데없는…” 운운해도 싱긋 웃음으로 답해주시길. 아내의 건조했던 마음이 촉촉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참고로, 자신이 태어난 달의 탄생석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좋다고 한다. 4월의 탄생석은 다이아몬드다. 여력이 있으시면….

서정민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